호빗(Hobbit)/Home is Behind(完)

[소린빌보] Home is Behind 上

Home is Behind



 세상에 아무리 별일이 다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지만. 빌보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사촌인 로벨리아 색빌배긴스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빌보가 30년 가까이 살고 있던 허름한 아파트로 두 명의 청년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들의 삼촌이라는 무섭게 생긴 한 남자는, 빌보를 향해 당장 그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명백한 주거침입이자 불법점거였지만, 빌보는 자신의 눈앞으로 내밀어 진 계약서를 보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집을 사촌인 로벨리아가 멋대로 이 남자에게 팔아버렸던 것이다. 빌보는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로벨리아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예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성만이 빌보를 반겼다. 작정하고 자취를 감춘 로벨리아를 찾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을 것만 같았다. 빌보는 차라리 자신의 눈앞에 험상궂은 남자를 향해 사정하는 길을 선택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름이?"

"소린 두린."

"네, 미스터 두린. 이제 이 집이 당신 소유라는 건 잘 알겠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오늘 당장 이 집을 비워줄 수는 없어요. 물론, 오늘부터는 법적으로 당신의 집이지만? 난 이 집을 나가면 갈 데도 없다고요!"


 빌보는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소린이라는 남자를 향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특히 빌보는 지금 동화책 후반 작업에 정신이 없는데, 이대로 쫓겨나면 어디서 작업을 마무리한단 말인가. 그러나 빌보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빌보를 고고한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달 정도만 시간을 주시면 안될까요? 미스터 두린? 제발요."

"그럴 순 없네. 나는 오늘 당장 내 조카들을 여기로 이사시키지 않으면 안되니까."



소린은 뒤에서 철딱서니 없이 웃으며 빌보의 집 물건을 이것저것 건드리는 자신의 두 조카를 향해, 한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들은 잠시 움찔하며 장난을 멈췄지만, 곧 슬금슬금 빌보의 집안에 걸려있는 동화 삽화들을 보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빌보는 소린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간절하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해야 해서 그래요. 한 달 뒤가 마감인데, 길바닥에서 일할 수는 없잖아요."

빌보의 불쌍하고 울망울망한 눈망울을 보자, 소린의 마음도 흔들린 것인지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달 동안 내 집에서 지내도록 하게. 저 두 조카 녀석들이 쓰던 방이 비어있으니."

"뭐라구요?"


그렇게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



 빌보는 덩그러니 책상과 침대만 놓여있는 널찍한 방안에 자신의 짐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자신이 왜 여기에 와있는지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마감이 급했다. 로벨리아가 빌보가 모아둔 돈까지 싹 들고 도망간 덕분에, 빌보의 수중에는 고작 17파운드가 전부였다. 염치없지만 어떻게든 이 집에서 마감을 마치고, 원고료를 받아서 당장 지낼 집을 구하는 수밖에. 물론 그사이에 로벨리아를 찾아내서 돈과 집을 돌려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녀가 그렇게 쉽게 잡힐 위인은 아니었다.


 다행히 험상궂은 첫인상과 달리, 소린은 너그러운 남자였다. 빌보에게 조카들이 지내던 빈방을 무상으로 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빌보가 아무 때나 꺼내먹을 수 있도록 시리얼과 칼로리메이트 등을 부엌에 잔뜩 챙겨놓아 주었다. 기왕이면 제대로 된 먹을 것을 챙겨줬더라면 좋았겠지만. 빌보가 지금 그런 걸 따질 형편은 아니었으니 그저 굶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소린은 금융과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출근은 다소 늦고, 퇴근은 이른 편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한집에서 얼굴을 맞대는 건 확실히 편한 일이 아니었기에, 빌보는 언제나 소린이 출근하고 나서야 겨우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 밖을 나와 늦은 식사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가 퇴근할 즘에는 방안에 틀어박혀 작업에 집중하는 척했다. 물론, 실제로 작업에 집중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그날도 빌보는 소린이 출근하는 문소리를 듣고 나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빌보는 한껏 기지개를 켜고, 목이 늘어난 셔츠를 대강 주워 입으며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문앞에 서 있는 시커먼 남자의 형체에 기절할 듯이 놀라, 소리를 질러댔다.


"으아아악!!"

".."

"...미스터 두린?"


 소린은 빌보의 비명소리가 시끄러웠는지, 한쪽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빌보는 자신의 뻗친 머리와, 지저분한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며 당황한 듯이 물었다.


"출근한 게 아니었군요."

"하도 안 나오길래, 죽었나 해서."

"아.."

빌보가 멋쩍은 듯이 동그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소린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빌보를 향해 물었다.

"아침은?"

"아직.."

"같이 먹지."



 소린은 빌보를 이끌고 식탁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빌보는 그 순간이 돼서야 깨달았다. 소린이 빌보를 위해서 시리얼과 칼로리메이트를 잔뜩 챙겨뒀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그가 하는 식사 전부라는 걸. 빌보는 아무렇지 않게 시리얼을 그릇에 부으려는 소린을 제지했다.


"세상에. 지금까지 내내 이걸로 끼니를 때웠던 거예요?"

"조카들이 있을 땐,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네."

"지금은 왜 고용인을 쓰지 않죠?"

"자네가 불편할 테니까."


 빌보는 의외의 대답에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냉장고로 다가가 그 안에 있는 쓸만한 재료들을 전부 꺼냈다. 달걀 몇 개와 콩 통조림, 오래돼서 쪼글거리는 감자가 전부였지만. 어쨌든 시리얼보다는 낫겠지. 빌보는 오랫동안 혼자 자신의 식사를 챙겨왔던 솜씨를 발휘해, 신속하게 그럴싸한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부실한 재료로 만든 것치고는 꽤나 그럴싸한 음식 접시를 소린의 앞에 내밀며, 빌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소린은 묵묵하게 포크를 들었고, 빌보역시 자리에 앉아 조용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소린은 식사시간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무척이나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그러자 빌보는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대형견을 길들이는 기분이랄까. 소린은 식사를 마치고 늦은 출근을 하며, 빌보에게 말했다.


"아침 정도는 앞으로도 같이 먹는 것이 좋겠군."

"좋아요. 제가 만든 음식이 그리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네요. 비록 재료가 좀 부실해서,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는 못했지만."

빌보의 말을 듣자, 소린이 자신의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빌보에게 건넸다. 빌보는 순식간에 황당한 표정이 되어, 그를 향해 물었다.

"이게 뭐죠?"

"식재료를 사려면 필요할 테지."

"내가 뭐 기둥서방이에요? 이런 걸 받게. 사양하겠어요."


빌보는 불쾌한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린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소린은 빌보의 불쾌한 반응이 오히려 의외라는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네 수중에는 돈이 하나도 없고, 식사는 같이 하는 거니까. 내 카드를 써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윽…. 그렇긴 하지만.. 너무 염치없어서."

"신경 쓰지 말게."


 빌보는 쭈뼛거리며 소린이 내미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렇게나 신세를 지다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 빌보는 속으로 자신의 사촌을 몇번아니 저주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그동안 신세를 졌던 것에 대한 보답을 꼭 하리라. 그리고 그때 빌보에게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공짜로 카드까지 얻어쓰는 건 너무 죄송하니까, 내가 뭐라도 해드려야겠어요."

"그럴 필요 없.."

"제가 그림 그리는 일을 하니까, 그쪽 초상화라도 그려줄게요."



 소린은 의외라는 듯이 빌보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빌보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뿌듯한지 얼굴 가득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빌보에게서 초상화를 선물 받은 사람들은 전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니, 소린의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는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소린 역시 그리 싫지 않았는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빌보는 매일 아침마다 소린과 식사를 함께하고, 그가 퇴근한 저녁에는 틈틈이 그를 스케치하는 일과를 반복했다.


 빌보는 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방 안 의자에 편한 니트차림으로 앉아있는 소린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처음 봤을 땐 정장에,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꼼꼼히 살펴보니 소린은 꽤 미남에 속하는 편이었다. 미간에서부터 곧게 뻗은 콧대와, 짙은 눈썹. 그리고 깊은 눈매. 빌보는 연신 감탄하며 소린의 얼굴을 종이 위에 빠르게 담았다. 빌보의 시선이 천천히 소린의 목덜미를 거쳐 탄탄한 가슴으로 내려왔다. 자신과는 달리 널찍하고 남자다운 흉부에 빌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빌보의 시선이 그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거쳐 다리까지 내려왔다. 소린은 가만히 있는 것이 지루하지도 않은 지, 자세를 유지하며 아무 말도 없이 빌보를 바라보았다. 빌보는 오히려 소린이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 온몸 구석구석 열병이 피어나듯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급기야 빌보는 스케치북을 덥고,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소린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어요. 조금 피곤하네요."

"그러지."


소린은 그제야 의자에서 일어나, 굳어있는 몸을 풀었다. 빌보는 자신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스트레칭을 하는 소린의 목덜미나 니트 아래의 복근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소린은 그런 빌보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뒤 방을 나섰다. 빌보는 자신의 어깨가 화상을 입은 것 처럼 화끈거린다고 생각했다. 


 그날 빌보는 묘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빌보는 아까처럼 소린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고, 소린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의자에서 일어나 소린이 점점 빌보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손이 빌보의 뺨을 느긋하게 쓸어내렸다. 빌보는 뺨에 느껴지는 남자다운 소린의 손길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소린의 손길이 빌보의 가슴으로 내려오고, 빌보는 어느새 자신의 책상 위에 나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자신의 몸  곳곳에 닿아오는 소린의 촉감이 빌보를 전율하게 하였다. 빌보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내어 신음을 터뜨렸다.



"헉!"


빌보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고, 자신이 옷을 다 챙겨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휴- 꿈이었나."


그러나 빌보는 자신의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에 절망했다. 빌보는 그날, 자신의 동거인을 상대로 몽정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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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로 받았던 소설인데, 부득이하게 상 하편으로 쪼개서 써야겠네요.
수수님이 리퀘해주신 한집에서 하숙or동거하는 소린빌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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