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빌보] 에버애프터 (1)
에버 애프터
Ever After
1.
빌보 배긴스, 프로도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키워준 그의 삼촌은 꽤 특이한 호빗이었다.
일반적으로 호빗들은 자신의 아늑한 호빗굴과 샤이어를 벗어나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프로도의 기억 속에서 빌보가 아무 말 없이 백엔드를 떠난 것만도 이미 수십 차례였다. 그의 화려한 외출은 언제나 예고 없이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몇 개월에서 길면 일 년까지도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이 되고는 했다. 프로도가 특별히 삼촌의 외출을 화려한 외출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여행을 떠났다가 샤이어로 돌아올때마다, 빌보의 손에는 언제나 값비싼 보석들이 주렁주렁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빌보는 그 보석들을 들고 오는 것을 썩 내켜 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들고오지 않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쨌거나 빌보는 그 보석들을 팔아 어렸던 프로도를 훌륭하게 키워냈으며, 이제 프로도는 훌쩍 자라 호빗 기준으로 성년이 되는 33살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생일을 하루 앞둔 오늘, 텅 비어있는 빌보의 방안을 보며 프로도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샤이어를 떠나계시려나.'
빌보 없는 생일을 맞이할 생각에 의기소침해진 프로도의 귀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프로도는 빌보가 돌아온 건가 싶어, 상대방이 미처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손님이 서 있었다.
"간달프!"
"오랜만이네! 프로도."
프로도는 반갑게 간달프의 팔에 어린아이처럼 매달렸다. 간달프는 언제나 빌보와 프로도에게는 반가운 친구이자 손님이었다. 프로도는 간달프에게 그간의 근황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곧이어 빌보의 부재에 대해 말했다.
" 삼촌은 이번에도 화려한 외출을 떠났어요. 전 정말 궁금해요. 도대체 삼촌은 매번 어디를 그렇게 여행 다니는 거며, 그 보물들은 어디에서 가져오는 것인지 말이에요. 혹시 삼촌이 예전 난쟁이들로부터 받았던 보물을 어딘가에 숨겨두고 조금씩 가져오는 것일까요?"
" 빌보가 자신의 모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던가?"
" 그럼요. 저는 언제나 용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는걸요."
프로도는 간달프를 백엔드안으로 들어오도록 안내하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삼촌의 모험에 관해 떠올렸다. 빌보는 어린 프로도가 잠들기 전마다 종종 자신이 젊은 시절 난쟁이들과 함께 그들의 보물을 되찾는 모험을 떠났던 일에 대해 들려주고는 했다. 샤이어의 작은 호빗이 트롤을 물리치고, 고블린과 오크와 싸우고, 엘프를 만나고 결국 용에게서 보물을 되찾았다는 놀라운 모험담은 어린 프로도를 무척이나 설레게했다. 그 후에 큰 전쟁이 일어나, 빌보가 자신의 친구인 참나무 방패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프로도는 빌보의 마음을 대신 하듯, 큰소리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혹시 삼촌이 이따금 사라지는 게, 난쟁이 친구들을 찾아가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지. 물론 소린을 친구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소린? 소린이라면, 삼촌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참나무 방패 소린을 말하는 건가요? 그는 예전에 죽었잖아요?"
프로도의 말에 간달프가 놀라 헛기침을 시작했다.
"죽어? 빌보가 그렇게 말하던가?"
"네, 삼촌은 그때 친구를 잃었다고 말했어요."
"아아, 알겠군. 전부 알겠어. 그는 아직 조카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들려주지 않았군."
간달프는 홀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작은 의자에 불편하게 몸을 수그려 앉고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프로도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 움직여 보였다.
"물론 빌보는 오크와의 전투에서 소린을 거의 잃을 뻔했지.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네."
그리고는 천천히 간달프의 이야기가 시작했다.
소린이 아조그의 칼에 쓰러져있던 그 갈가마귀 언덕에서, 빌보는 한참이나 담요를 뒤집어쓰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독수리가 왔는데도, 소린은 눈을 뜨지 않았다. 다른 난쟁이들이 다가와 그의 시신을 수습해간 이후에도 빌보는 그 장소를 한참이나 떠날 수가 없었다.
'이건 전부 꿈일 거야.'
빌보는 드워프들이 그들의 왕과 조카들의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도, 그들의 장례식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빌보의 눈에 아직도 소린의 마지막 눈빛이 아른거려, 그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빌보는 차마 소린의 눈을 감겨줄 수도, 그의 이마에 입 맞출 수도 없었다. 그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보내주면, 정말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빌보는 장례가 치러지는 며칠 동안 에레보르에 머물기는 했지만, 그 기간 동안 작게 마련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빌보는 소린의 장례식도, 에레보르 성안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를 보게 된다면, 애써 꾹꾹 누르고 있던 비통한 감정이 당장에라도 폭포처럼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다른 난쟁이들이 빌보의 방을 찾아와 장례식에 참석하기를 요청했지만, 빌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저 빌보는 하루빨리 소린을 떠올릴 수 없는 장소, 샤이어로 돌아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빌보는 조용히 발린을 찾아가 예정보다 빨리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발린, 음…. 전 곧 샤이어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벌써? 이런…. 그렇다면 자네를 위해 송별파티를 열어줘야겠군."
" 아뇨 아뇨,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 전 그저, 내일 아침 조용히 떠날게요."
빌보는 발린의 제안을 극구 사양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빌보는 난쟁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지나치게 빨리, 자신들의 동족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물론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감추려, 더욱 겉으로 유쾌한 척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빌보는 차마 그들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었다. 빌보는 어쨌든 떠들썩한 작별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발린의 배웅만을 받은 채 짐을 꾸려 성문을 나섰다.
"오늘 밤 성대한 파티가 열릴 텐데, 정말 이대로 돌아가겠나?"
빌보는 발린의 말에 조용히 미소만을 지으며 그와 나란히 걸었다.
"노래가 불리고, 이야기들이 전해질걸세. 참나무 방패 소린은 전설로 기억되겠지."
발린의 입에서 소린의 이름이 불리자, 빌보의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발린…. 그는.. 전설이 아니에요. 내겐…. 그는 내게.."
빌보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말만을 남겼다.
" 인사라면 직접 하게나."
발린이 웃으며 비켜서자, 그곳에는 발린을 제외한 열두 명의 난쟁이들이 어느새 몰려와 빌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모습을 보자, 빌보의 마음이 다시 한 번 울컥 차올랐다. 빌보는 그들을 향해 작별인사를 하려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잠깐, 열두 명?
빌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 번 난쟁이들을 바라보았다.
왜 열두 명이지?
" 마저 말을 해보게 마스터 호빗. 내가 그대에게 뭐라고?"
그리고 열두 명의 난쟁이들 사이에서 빌보를 향해 걸어 나오는 건, 놀랍게도 참나무 방패 소린이었다.
<계속>
예전에 풀었던 썰 기반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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