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빌보] In Dreams (8)
In Dreams - 8
현대 AU/ 환생/ 여성향
빌보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켰다. 그동안 빌보가 끊임없이 소린에게 전생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려 노력했으나, 소린은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확언했다. 소린이 빌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이 책을 쓴 것은 소린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소린을 제외하고 대체 누가 빌보의 기억으로 책을 쓸 수 있지? 빌보는 전생에 다른 난쟁이나 간달프에게 소린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순간 빌보의 머릿속에 어떤 한가지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전생의 참나무 방패가 꼭 똑같은 외모로 환생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빌보는 휘청거리며 몇 걸음인가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결국 길 한가운데 주저앉고 말았다.
"그럴 리가 소린이…. 내가 꿈속에서 보던 그 남자의 환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야..? "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단 한 가지의 사실이 빌보의 머릿속에서 점점 크게 외치고 있었다. 그는 소린의 얼굴을 하고 소린과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지만, 소린의 전생이 아니야. 소린은 네가 사랑했던 참나무 방패가 아니라고. 빌보의 시야속에 담긴 주변 풍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행인 몇몇인가가 그런 빌보를 힐끔힐끔 바라보았지만 빌보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소린…. 소린을 찾아가야 해."
소린은 업무를 마치고 회사를 나서면서, 휴대폰을 몇 번이나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루종일 빌보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해, 그는 매우 초조해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쯤에 소린이 그의 휴대폰으로 두 번인가 전화를 걸고, 메시지도 남겨보았지만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다. 햄페스트를 통해, 오늘 빌보에게 별다른 스케쥴이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고, 그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기도 했으나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보고만 돌아올 뿐이었다. 소린은 우선 자신의 집에 들러서 빌보의 연락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빌보는 종종 새로운 신메뉴의 개발을 위해서 정신없이 다른 가게나 시장을 돌아다니기도 하니까. 만일 오늘 자정이 되기 전까지 연락이 없다면, 그때는 직접 빌보를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몰랐다. 그에게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소린은 차 안에 몸을 싣고 자신이 어제 꾸었던 꿈에 관해 떠올렸다. 꿈속의 자신은 빌보에게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의 란제리 같은 것을 선물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좀 우스운 모양의 선물이었다. 어쨌든 꿈속에서 자신이 빌보에게 선물을 하며 느꼈던 감정이 어딘지 부드럽고 따뜻해서, 그는 여유 있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 빌보의 연락이 끊어지기 전까진. 어쩌면 빌보의 말대로 자신이 빌보의 전생의 연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린은 창가에 비친 자신이 어느새 바보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도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했을 테지만, 스스로 머쓱해져 헛기침하며 소린은 자신이 떠올렸던 조금 전의 생각을 비웃었다.
' 바보 같긴. 전생의 연인이라니. 빌보한테 물들어도 단단히 물들었군 '
소린은 절대 자신이 꿈을 꾼다는 사실에 대해 빌보에게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안 그래도 틈만 나면 전생의 인연 운운하는 빌보의 증세가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 물론 그런 모습도 무척 귀엽기는 했지만. 소린이 또다시 풀어지려는 자신의 표정을 애써 관리하고 있을 때, 그가 탄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소린은 자신의 집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작은 남자의 형상을 보자마자 놀라며 기사에게 차를 세우도록 했다. 그는 차가 완전히 멈춰 서기도 전에 다급하게 차 문을 열고 웅크리고 있는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빌보! "
"..소린?"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휴대폰은 어쩌고?"
소린의 목소리에 빌보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빌보의 얼굴은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눈에 띄게 창백했다. 울기라도 했던 건 지 두 눈가가 빨갛게 부풀어있었다. 빌보의 얼굴을 보자 소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린의 목소리가 분노로 낮게 가라앉았다. 만일 누군가가 빌보에게 해코지를 했거나,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면 당장에라도 그를 찾아가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빌보는 혼란스러운 듯이 고개를 저으며, 소린을 향해 말했다.
"소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게요. 혹시…. 서재에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서재?"
"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소린은 빌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천천히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자신을 서재까지 데리고 가는 소린의 손길이 너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 빌보의 가슴이 자꾸만 따끔따끔 아파져 왔다. 빌보는 자신의 허리에 둘린 소린의 손을 애처롭게 꾹 맞잡았다. 빌보의 손끝이 아직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서재에 들어와 문을 닫자마자 빌보는 소린의 앞에 들고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이게 뭐지?"
"소린. 혹시 예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소린은 책을 들고 천천히 앞뒤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며 책의 줄거리를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빌보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런 소린을 불안하게 살펴보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던 소린이 갑자기 큰소리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거였군! 빌보. 당신의 꿈의 정체가 이거였어. 이 책 내용이 당신이 내게 들려주던 이야기와 똑같잖아?"
"당신도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는지 말해줘요. 소린."
빌보는 전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불안하게 소린을 바라보았다. 소린은 책의 겉표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해왔다. 비록 이런 종류의 소설책은 그다지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읽은 기억이 있다면 분명히 이 넓은 서재 안에 책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소린은 빌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의 서재를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책꽂이 안쪽 한가운데서 마침내 빌보가 자신에게 보여준 책과 같은 표지의 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 여깄었군. 나도 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 모양이야."
소린이 대답함과 동시에 빌보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매우 절망적인 기색이 가득했다. 소린은 빌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얼굴에 띄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 그가 빌보를 향해 물었다.
"너도 이 책을 보고 꿈을 꿨던 게 아닌가? "
" 난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어요."
" 뭐? 설마. 읽고도 기억을 못한 게 아니고?"
소린의 말에 빌보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 소린…. 내가 꿈을 꾼 건 열다섯 살 때부터였어요. 그 책의 출간연도를 확인해봐요.. "
빌보의 말을 들은 소린이 곧바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통권페이지를 확인했다. 빌보의 말대로 책은 5년 전에 출간된 것이었다. 소린은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게 뭐가 어떻단 소리지?"
"소린. 내가 그 책을 쓴 게 아니라면, 나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어요."
"그게 누군데! "
"내가 전생에 사랑했던 그 남자."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소린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빌보의 말들이 의미하는 것들이 퍼즐처럼 서서히 맞춰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빌보를 향해 말했다.
"전생에 네가 사랑했던 남자가 환생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마도요."
"그래서 그게 지금 어떻다는 거지? 지금 제가 사랑하고 있는 건 나잖아."
소린의 말에 빌보가 수긍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이 소린을 안심하게 하였다. 그러나 빌보가 뒤이어 그를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잔인한 말들을 슬픈 목소리로 내뱉기 시작했다.
" 하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이 전생의 참나무 방패고, 그가 날 기다리고 있다면 어떡하죠…? "
" 뭐..? "
빌보의 두 볼에 눈물이 또르륵 떨어져 흘렀다. 소린이 아연한 표정으로 빌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소린. 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가 내 팔 안에서 차갑게 굳어가던 모습이, 내가 그를 사랑했던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단 말이에요. 소린…. 난 지금의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가 만일.. 내가 자신을 찾아와주기를 기다리면서 이 책을 쓴거라면.. "
"빌보, 잠깐만…."
소린은 다급하게 빌보의 팔을 붙잡았지만 빌보는 천천히 소린에게서 자신의 팔을 빼며, 소린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 난 그를 찾아가야 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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