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빌보] Stay together
Stay together
커다란 옷 가방과 두꺼운 전공서적을 바리바리 싸들고 낑낑대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빌보는 D동 5층 복도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제 발로 오게 될 줄이야. 빌보가 머무는 기숙사 H동은 다른 기숙사에 비해 노후해서 방학 중에 보수공사를 해야만 했다. 빌보도 그 얘기를 미리 듣기는 했지만, 하필 중요한 공모전을 앞두고 있어서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번 방학에 공사를 하다니. 학교에서는 방학 때도 남아있는 H기숙사의 학생들에게 1인실을 쓰는 다른 기숙사생과 같은 방을 쓰라 지시했다. 어차피 방학이고 빈방도 많을 텐데, 무슨 쪼잔한 방침인지. 어쨌든 울며 겨자 먹기로 빌보는 D동 503호에서 2주간 신세를 져야만 했다.
친한 친구들이 많은 E동이나, 같은 학과 동기들이 있는 M동도 나쁘지 않았는데 하필 D동이라니. 빌보는 다른 H동 친구들과 떨어져 자신만 D동으로 오게 된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D동은 유난히 시끄러운 학생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소등시간, 취침시간을 무시하는 건 물론이고, 잦은 술자리에 한밤의 댄스 타임, 지저분한 사내 녀석들의 시끄러운 소굴이 바로 D동이었다.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빌보로서는 D동에서의 생활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빌보가 D동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따로 있었으니, 학교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D동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 사람이 D기숙사에 있다지만, 2주 동안 마주칠 일이 있겠어? 방학이니까, 자기 집에 돌아가 있을 지도 모르고...'
하지만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빌보가 자신이 머물러야 하는 503호의 문을 열자마자, 그가 가장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던 상대의 얼굴이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맙소사. 빌보는 전공서적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떡 벌어진 입으로 임시 룸메이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소린. 빌보가 예전에 아주아주 잠깐 사귀었다가 헤어졌던 옛날 남자친구였다.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빌보는 모서리가 살짝 찌그러진 전공 책 귀퉁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소린이 여전히 변치 않은 낮은 목소리로 빌보에게 안부를 물어왔지만, 빌보는 무슨 생각에 빠져있는지 대답이 없었다.
"빌보?"
"아, "
소린이 빌보의 이름을 재차 부르자, 그제야 깜짝 놀란 빌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소린을 바라보았다. 소린은 미묘하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빌보가 써야 할 침대와 책상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었다. 여전히 잘생기고 친절한 신사였다. 빌보는 그의 뒤를 따라 503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같은 학교의 기숙사가 맞는지, D기숙사의 1인실은 빌보가 쓰던 H기숙사 3인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최신시설, 딱 봐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내부 가구.
뭐, 그럴 만도 했지. 소린은 빌보와는 출신 성분도 집안도 다른 부유한 가문의 사람이었으니, 허접스러운 3인실을 쓰게 둘리가 없었다. 평범한 시골 출신인 빌보와는 뿌리부터 다른 남자였다. 빌보는 그런 것도 모르고, 3년 전 소린의 고백을 대뜸 받아들였으니. 물론 애인으로서의 소린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남자답고, 매력적인 외모에 뛰어난 성적과 완벽한 성격까지. 조금 거만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예절이 기본적으로 배어있는 귀한 집 자제였다.
어떤지 그런 그와 사귀려면 자신도 뭔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 빌보는 항상 자신을 꾸미고 그 앞에 서고는 했다. 교내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무리해서 비싼 브랜드의 옷을 사 입었다. 늘 소린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해 비싼 식당에서 더치페이를 하기도 하고, 선물을 받으면 비슷한 가치가 있는 다른 선물로 보답했다. 그런 식으로 돈을 썼으니 일주일도 안 되어, 고향에서 보내준 용돈이 똑 떨어졌던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 결국, 열흘만에 빌보는 소린에게 이별을 통보하고야 말았다. 소린은 끝까지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했지만, 빌보는 차마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그저 우린 좀 안 맞는 것 같았다는 두루뭉술한 변명으로 도망치듯이 그와 헤어져야만 했다.
어차피 학부도 다르고, 학년도, 각자 쓰는 건물도 달라서 그다지 학교 안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렇게 3년 동안 잘 도망 다녔었는데,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에 이런 식으로 얽히다니. 운명도 야속하지. 어쨌든 공사가 끝나기까지 2주 동안은 이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니, 빌보는 최대한 그와 겹치는 시간을 피하기로 했다.
빌보는 독서실과 교내 카페테리아를 전전하며, 최대한 기숙사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였다. 소등시간이 다 지나서야 조용히 들어와 잠을 자고, 새벽같이 씻지도 않고 노트북과 책만 챙겨서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그날도 강의실 근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빌보를 보며, 다른 동기들이 혀를 끌끌 찼다.
"뭐하냐, 멀쩡한 기숙사 두고."
"하하.."
"그냥 편하게 지내. 뭐 죄 지었냐? 막말로, 뭐 네가 그 방으로 보내달라고 떼쓴 것도 아니잖아."
동기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빌보가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3년 전에 잠깐 사귀었다 헤어진 사이가 뭐 어떻다고. 사실 그들의 말이 아니라도 빌보 역시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슬슬 한계에 달해있었다. 소린의 방에서 겨우 잠만 자고 나오는 것 뿐인데, 그나마도 새벽마다 옆방에서 시끄럽게 구는 D동 명물 녀석들 때문에 도무지 깊이 잠이 들 수 없었다. H동에 있을 때도 익히 유명했던 D동의 심야 댄스 타임을 직접 겪어보니, 정말이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고작 3일 만에 이렇게 기운이 빠지니, 앞으로 열흘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결국 빌보는 소린을 피해 다니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빌보는 자료조사를 마치자마자 점심도 거른 채 기숙사로 돌아왔다.
다행히 낮시간이라 그런지, 소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심을 하고 나니 미친 듯이 잠이 쏟아져, 빌보는 눈에 보이는 아무 침대에나 쓰러져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조용한 기숙사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건지. 얼마나 푹 잠이 들어 있었을까? 빌보는 방안이 어둑어둑해지고 나서야 슬며시 눈을 떴다. 빌보가 눈을 뜨자 부스럭거리며 테이블에 먹을 것들을 꺼내놓고 있는 소린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
"아.. 밥 먹게요? 왜, 식당 내려가서 안 먹고?"
소린은 말없이 시계를 가리켰고, 빌보는 저녁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식당은 진작에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빌보가 밥도 못 먹고 쓰러지듯이 잠들어있자, 소린이 직접 나가서 저녁 도시락을 사온 모양이었다. 예전에도 말수는 적지만 이런 식의 배려가 있는 사람이었지. 조금 감동을 받았는지, 빌보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잠든 침대도 소린의 침대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빌보를 깨우거나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없던 소린의 다정함에, 빌보의 목 안쪽이 간질거려왔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모습이 3년 전에도 빌보를 숨 막히게 만들고는 했었다. 소린과 빌보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도시락만 바라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빌보의 시선에 무언가 거슬리는 것이 들어왔다.
"...소린. 버섯은 왜 다 빼 놓는 거예요?"
"버섯은 못 먹어."
"알러지?"
"아니 그냥. 식감이 마음에 안 들어서."
탁-
빌보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린을 바라보았다. 애도 아니고, 편식이라니. 그것도 버섯을 골라내다니. 빌보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편식습관이었다. 빌보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듯 소린을 향해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어 입속이 근질거렸으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잔소리를 꾹 눌러 참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같이 밥을 먹을 일이 더 있을 것도 아니고. 굳이 룸메이트와 얼굴 붉히면서 싫은 소리를 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
믿을 수 없어.
그날의 편식사건 이후로, 빌보는 소린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엄마가 된 기분으로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알면 알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던 완벽한 소린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씩 깨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갔다 들어오면서 입고 있던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거나, 다른 기숙사생들과의 술자리에서 큰소리를 내며 웃고 떠든다거나 하는 것들.
그중에서도 빌보를 가장 경악하게 만든 것은 끼니를 소홀히 한다는 점이었다. 소린의 식사시간은 언제나 제멋대로였고, 그나마도 대충 아무거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한 끼를 때웠다. 규칙적인 생활방식과, 영양 잡힌 식사를 중요시하는 빌보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습관이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니. 하지만 그럴 때마다 빌보는 2주만 참자며 자신을 다독였다. 소린은 자신의 애인도, 자식도 아니다.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참을성은 빌보가 그 방에 머문 지 일주일하고 이틀이 지났을 무렵에 바닥이 나고 말았다. 공모전 PT를 준비하느라 도서관과 카페를 오가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빌보가 방문을 열자마자 강한 술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읔."
방안 꼴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옆방에서 매일같이 시끄러운 소음의 주범인 킬리와 필리가 소린과 함께 방안에서 한바탕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소린이 빌보를 보며 인사를 하자 빌보는 애써 불편한 얼굴에 억지 웃음을 띠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빌보는 그대로 서서 천천히 방안을 살피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술병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과자부스러기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간 꾹꾹 눌러왔던 빌보의 잔소리 본능이 결국 폭발했다.
"다들 그대로 스탑!!"
"왜?"
"거기 두 사람은 병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요!"
"어? 같이 마시자!"
"지금 당장 돌아가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빌보의 얼굴과 소린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던 킬리와 필리는, 결국 아쉬워하며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자마자 빌보는 빗자루를 가져와 과자부스러기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소린을 향해 잔소리를 쏟아냈는데, 그 분노에 찬 잔소리가 옆방까지 들릴 정도였다. 소린은 묵묵히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정리하며 홀로 빌보의 잔소리를 받아냈다.
자는 시간도 불규칙적이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도대체 방은 왜 제때제때 치우지 않으냐는 둥, 애도 아니고 편식은 왜 하냐는 둥. 빌보의 잔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졌으나, 소린은 화내거나 기분이 나쁜 기색 없이 그저 빌보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런 소린의 시선에 빌보도 한풀 누그러져, 소린이 앉아있는 테이블 맞은편에 풀썩 주저앉아 말했다.
"나도 한 잔 줘봐요."
"빌보? 술 싫어하지 않았어?"
"..아뇨. 싫어하는 건 아니었어요."
빌보는 3년 전 혹여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까 봐, 소린에게 술을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라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빌보는 과에서 유명한 애주가였다. 이젠 더는 소린의 앞에서 이미지관리를 할 것도, 내숭을 떨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소린과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며, 적당히 취기가 오른 빌보가 말했다.
"당신이 이런 성격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네요. 생각보다 허술하고, 손이 많이 가고."
"나도 네가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성격인 줄은 몰랐지. 예전엔…. 좀 더 차분하고 침착했던 것 같은데."
"그거야 당신한테 맞추느라 내숭 떨고 있던 거고."
빌보의 말에 소린이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요했다. 단숨에 잔에 담겨있던 술을 들이켜고, 소린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빌보, 난 사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
"......"
"내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지?"
소린의 물음에 빌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소린에게 문제가 있던 게 아니었다. 너무도 완벽한 모습의 소린에게 지레 겁먹었던 빌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빌보는 대답 없이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 보였던지, 소린이 빌보의 술잔을 빼앗으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그만 마시는 게 좋겠군."
"...난 당신이 너무 잘나서, 그게 싫었어요."
"뭐?"
"그렇잖아요. 난 특별전형으로 이 학교에 겨우 입학했는데, 당신은 잘난 집안, 잘난 출신, 잘난 성적으로 학교 안의 유명인사였고…. 처음엔 내가 뭣도 모르고 교제신청을 받아들였는데, 알면 알수록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거든요. 난, 당신한테 맞추려고 내 성격도 숨기고, 내 형편도 감추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고. 그게 너무 지쳤었거든."
빌보는 가까이 다가와 있는 소린의 두 뺨을 감싸 쥐더니, 잔뜩 꼬인 발음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만약에 이렇게 허술한 면이 있는 줄 진작 알았다면, 좀 달라졌을까요?"
"......그럼, 다시 만날까?"
전혀 취하지 않아 보이는 소린의 진지한 말에, 빌보의 눈빛이 흔들렸다. 3년이나 지났지만, 그동안 다른 누구와도 사귀지 못했던 이유. 다른 어떤 이도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누구보다 빌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소린의 입술이 점점 다가왔고, 빌보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몸이 눕혀지고, 뒤통수가 바닥에 닿았음이 느껴졌다. 빌보는 눈을 감고 소린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이건 취했기 때문이야. 그래, 취했기 때문이야. 미련 같은 게 아니라고.
***
그 후의 두 사람에게 눈에 띄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빌보는 가끔 소린의 편식이나 식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소린은 예전보다는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되찾았다. 이따금 키스를 하거나, 농도 짙은 스킨십을 하기는 했지만, 다시 사귀자는 말은 서로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예정보다 빨리, H동의 공사가 끝났다. 빌보는 못내 아쉬워하며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갔고, 빌보를 배웅하는 소린은 생각보다 덤덤해 보여 기어코 빌보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다.
'뭐야. 아쉬워하지도 않는 건가.'
빌보는 소린이 내심 자신과 함께 지내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또 사서 걱정을 했다. 생각해보면 옛 연인 앞에서 자신이 너무 감추는 것 없이, 생활감 있는 모습을 다 드러냈던 것이 주책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빌보는 깔끔하게 보수공사가 끝난 자신의 기숙사 방안에 오도카니 앉아, 생각에 잠겼다.
'다시 만나자고 먼저 말할까? 하지만 거절당하면 어쩌지?'
빌보의 고민은 며칠을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서 소린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 누군가 빌보의 3인실 기숙사를 찾아왔다. 소린이었다. 소린은 마치 몇 주 전 빌보가 그랬듯이, 커다란 짐가방과 책들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멍하니 서 있는 빌보를 밀고 소린이 방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뭐…. 뭐예요?"
"D기숙사 수도가 터져서, 공사해야 한대."
"네? D기숙사는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쓸만했잖아요."
"글쎄. 누군가 수도관을 일부러 터뜨렸다고 하더군."
설마-.
빌보의 의심 섞인 시선을 외면하며, 소린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있던 D기숙사 1인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낡은 방이었다. 소린은 그중에 제일 커 보이는 침대에 자신의 짐가방을 던졌다. 그러자 빌보가 깜짝 놀라 말했다.
"거기는 저랑 같은 방 쓰는 후배 침대인데.."
"아, 네 룸메이트는 다른 방으로 옮겨달라고 했어."
소린의 뻔뻔한 표정에, 빌보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바람 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하니 수도관을 터뜨린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만했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주제에,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빌보를 흘끔 바라보는 소린이 예전의 그답지 않게 귀여워 보였다. 그래, 거절당하면 그냥 졸업이나 하면 되겠지.
빌보는 소린을 향해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소린, 나도 마침 할 얘기가 있었는데, 들어줄래요?"
Fin.
***
트위터에서 제삼님께 리퀘로 받은,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 소린빌보였습니다.
리퀘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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