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Hobbit)/In Dreams(完)

[소린빌보] In Dreams (1)

In Dreams - 1 





"요즘 그 꿈을 꾸는 빈도수가 더 늘어나고 있어." 



 빌보는 신선한 딸기가 올려진 앙증맞은 컵케이크에 섬세한 손길로 작은 깃발을 하나씩 꼽았다. 빠르고도 능숙하게 컵케이크들을 완성해 트레이에 차곡차곡 담는 그의 손길은 능숙한 전문가의 솜씨가 틀림없었다. 그의 동료인 햄페스트는 투명한 컵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과일들을 담으며 빌보의 '꿈'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이번에도 그 남자가 나오던가요?"

"응. 이번엔 얼굴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하더군." 


 빌보는 종종 꿈속에서 모르는 남자를 보곤 했다. 빌보가 처음 그 꿈을 꾼 건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겨울이었다. 꿈은 늘 같은 내용이었는데, 빌보가 동그란 문을 열면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십몇 년이 지나는 동안 빌보는 그 꿈을 반복해서 꾸었고, 그 남자의 얼굴은 이제는 눈감고도 그릴 수도 있을 정도로 확실히 외우게 되었다. 빌보가 그림솜씨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얼굴을 진작에 초상화로 남겨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엔 아는 사람의 얼굴이거나, 티비 속에서 본 연예인이 아닌가 싶어 열심히 그 얼굴을 가진 남자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 꿈은 처음엔 일 년에 한 번꼴이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게 되었다. 그리고 꿈을 꿀 때마다 조금씩 뒷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던가요?" 

"그와 그의 동료들이 내 주방을 털었어." 


 빌보의 대답에 햄페스트가 유쾌하게 웃었다. 


"꿈속에서 당신 주방도 이렇게 환상적이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득 차 있던가요?"

"그럼. 당연하지." 


 빌보가 마지막 깃발을 꼽자, 그날의 파티음식 세팅이 모두 끝났다. 빌보는 뿌듯하게 자신이 케이터링한 연회장의 테이블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제법 유능한 케이터러였다. 한때는 대형호텔에 소속되어있었으나, 작년부터 독립해서 개인적으로 작은 규모의 케이터링서비스를 시작했고, 햄페스트 갬지는 그의 유일한 동료였다. 지난 1년 동안은 거의 일이 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빌보의 수준 높고 맛있는 핑거푸드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번 연말은 제법 바빠졌다. 


" 오, 음식들이 모두 준비되었군요." 

" 발린! "


 빌보는 백발의 멋진 노신사를 향해 반갑게 돌아섰다. 지난달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자선행사의 케이터링을 맡았을 때, 그를 만났다. 그는 연말에 있을 자신의 회사 VIP 송년 모임에서도 음식들을 준비해 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고, 빌보는 흔쾌하게 수락했다. 그 회사가 이렇게 큰 회사인 줄은 몰랐지만.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군요. 보기에도 예쁘고." 

"손님들이 마음에 들어 하실 지 모르겠네요."  

"걱정 말아요. 아주 훌륭한 상차림이예요. 모두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


 발린은 흐뭇하게 웃으며 준비된 음식들을 둘러보았다. 


"그럼 저는 돌아갔다가, 파티가 끝나면 철수하러 올게요"

"오, 빌보. 괜찮다면 당신도 파티에 참석하는 게 어때요?"

"네? 아뇨 괜찮아요. 전.."

 "VIP 모임이라고 하지만 반쯤은 그냥 사적으로 아는 이들이 편안하게 즐기는 자리예요. 그리고 당신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는 조카들의 독서클럽을 위한 케이터러를 찾고 있거든요."

 "뭐, 그렇다면." 


빌보는 못이기는 척 발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있어 새로운 고객을 소개받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발린의 말대로 파티는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빌보와 햄페스트는 한쪽 구석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을 시식해보기 시작했다.


"다음번에는 연어 카나페 위에 레몬즙을 조금 더 뿌려봐야겠어. 그리고 새로운 디저트에 대해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 빌보. 제발 일 얘기는 그만하고 저녁 식사에 집중하는 게 어때요?"


 햄페스트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제발 조용한 식사를 하기를 원했다. 빌보는 그의 의견을 존중해, 자신의 새 디저트에 대한 구상은 마음속으로 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입구가 잠시 술렁이며 누군가 홀로 들어섰다. 몸에 딱 맞는 수트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잘생긴 남자였다. 빌보와 햄페스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다. 


 "와우. 저 키에 저런 얼굴이면, 세상 살맛 나겠군." 

 햄페스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빌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 아, 빌보. 당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당신 얼굴도 꽤 괜찮은 편이에요. 물론 키는 좀.. 아니 꽤 작지만."


 사실 빌보는 햄페스트가 뭐라 말하는지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방금 홀로 들어온 키 큰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빌보? "

 "저 사람이야."

 "네? "

 "저 사람이 내 꿈에 나왔던 그 남자라고"


 그리고 햄페스트가 그를 말릴 새도 없이 빌보가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빌보는 자신이 무례한 행동을 한다는 자각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난 당신을 알아요. 당신을 꿈에서 본 적이 있어요." 


 빌보가 조금만 더 이성적이었다면, 그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지 깨달았을 텐데. 남자의 깊은 눈동자 속에 경멸의 빛이 서렸다.


 "꿈이 아니라 티비에서 봤겠지. 혹은 잡지기사였거나"

 "네?"


 다급하게 남자의 주변으로 관리인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은 빌보를 그에게서 떨어뜨렸고, 남자는 불쾌한 듯이 관리인들에게 말했다.


 "대체 왜 이런 녀석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거지? 아무나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잖아." 


 그제야 자신의 무례를 깨달은 빌보가 다급하게 해명했다.


 "아, 실례를 범해서 죄송해요. 전... "


 빌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발린이 다급하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이런 벌써 만나버렸군요. 제가 소개를 해드리려고 했는데. 빌보. 이쪽은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인, 두린가문의 소린이에요."

 "그리고 이쪽은 이 파티의 케이터링을 맡은 빌보 배긴스예요 소린." 


 빌보의 이성이 그제야 돌아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지금 일터에서, 그것도 자신의 클라이언트에게 무슨 무례를 범한 거지?


 빌보는 즉시 자세와 표정을 바로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건넸다. 소린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것으로 빌보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가 자리에서 떠나고 나서야 빌보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중요한 고객을 잃을 뻔했다. 이 정도로 큰 규모의 회사라면 앞으로 분명 많은 모임과 행사가 있을 텐데. 빌보는 가만히 자리로 돌아가 소린이 귀빈들을 상대로 환영사를 연설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빌보가 꿈속에서 늘 보던 그 남자가 맞았다. 낯익은 얼굴과 몸짓은 꿈속에서와 같았다. 목소리 역시 꿈에서 들은 대로였다. 그가 서있는 뒤쪽벽에 회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르켄스톤. 소린은 이 커다란 철강회사의 젊은 CEO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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