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Hobbit)/In Dreams(完) 15. 1. 1

[소린빌보] In Dreams (2)

In Dreams - 2 




  소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유쾌하지 않은 아침을 맞이했다. 원래 그는 사람들이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직책상 언제나 많은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고, 연말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주간이었다. 잇따른 연말파티 때문에 그는 지나치게 많은 술을 마셔야 했고, 그는 자신의 두통의 원인이 그것이라고 판단했다. 

 두통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요소가 또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가 요즘 꾸고 있는 이상한 꿈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애들 동화인지, 영화인지에 나올 영문모를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지저분한 수염을 달고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꿈인데도 빌어먹을 상처는 마치 실제처럼 아팠고, 더욱 최악인 건 그 꿈의 마지막이 언제나 자기 죽음으로 끝난다는 사실이었다. 죽는 꿈이라는 것은 언제나 불쾌하다. 


소린은 차가운 얼음물을 마시며, 며칠 전 파티에서 만났던 수상한 작은 남자에 대해 떠올렸다. 정확히 그를 만나고 나서 이 기분 나쁜 꿈들이 시작됐다. 그 작은 남자는 발린이 직접 섭외한 실력 좋은 케이터러라고 했다.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개를 받을 당시 남자에 대한 인상이 워낙 최악이라, 소린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는커녕 얼굴조차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버린 상황이었다. 



" 케이터러가 아니라 최면술사라던지 그런 거 아냐?" 



 혼잣말을 소리내어 내뱉고 소린은 스스로 방금 발언이 얼마나 비논리적이었는지에 대해 반성했다. 어떤 최면술사도 단순히 인사를 한번 나눈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최면을 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소린은 그저 꿈을 꿨을 뿐이었다. 자신의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소린은 바로 자신의 비서실장인 발린에게 연락했다. 다음 주에 킬리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케이터링이 필요했다. 





 빌보는 자신의 키의 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3단 케이크를 힘겹게 테이블 위에 올렸다. 직접 케이크를 구운 건 오랜만이었다. 그의 욕심 많은 열두 살짜리 클라이언트의 생일을 위해, 빌보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케이크를 준비해야 했다. 1단은 부드러운 치즈케이크 위에 블루베리를 듬뿍 얹었고, 2단은 신선한 과일과 새하얀 생크림을 아낌없이 넣고 생딸기로 겉면을 가득 채웠다. 가장 위에 얹어질 3단은 생일의 주인공인 킬리의 요청대로 빌보가 지금까지 만든 케익 중에서 가장 많은 초콜릿 장식을 얹어야만 했다. 빌보는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유하고 거대한 저택의 1층에서 생일파티를 위한 테이블을 꾸몄다. 

 오늘은 햄페스트에게 볼일이 있어서, 빌보 혼자서 생일파티를 준비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생일파티라고 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왔으나 그것은 빌보의 착각이었다. 5분에 한 번씩 뛰어 내려와 자신의 케이크를 쳐다보고 가는 킬리와 자신의 생일엔 왜 케이크가 1단이었냐고 투덜대는 필리 때문에 빌보는 일하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생딸기로 직접 만든 사탕을 쥐어주고 나서야 겨우 빌보는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방해꾼이 1층 거실로 내려왔다.


소린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빌보의 손끝이 긴장으로 떨려왔다. 그는 킬리처럼 왔다 갔다 하거나 시끄럽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만히 한쪽에 서서 자신을 지켜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빌보의 집중력이 사정없이 흐트러졌다. 사실 어젯밤 빌보는 또 한 번 그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처연한 노랫소리가 꿈에서 깬 이후에서 계속 맴돌아서, 빌보는 오늘 그답지 않게 말수가 적었다. 


" 꿈속에서 날 본 적이 있다고 했나?"


 그런 빌보를 향해 소린이 말을 걸었을 때, 빌보는 너무 놀라서 꼬챙이에 끼우려던 방울 토마토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의 목소리가 꿈속에서 부르던 노랫소리와 너무도 똑같아서, 빌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빌보가 어색해 하거나 말거나, 소린은 빌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키도, 손도 작았다. 발도 작았다. 그 작은 손으로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작은 동물의 월동준비를 보는 것만 같아 우스웠다. 


"꿈에서 내가 어떻게 나왔지?"

" ... "


 빌보는 소린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서 말해도 괜찮을지 고민하며 머뭇거렸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또 어떤 말실수를 해서 그를 화나게 할 지 몰랐다. 빌보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테이블을 정리하고 한 발치 물러났다. 


" 음. 뜨문뜨문 나와서.. 정확히 그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는 꽤 고귀한 신분의 사람인 것 같았지만, 그의 손은 험한 일을 한 것 처럼 거칠었고... 아, 그는 길치였어요. 우리 집을 찾아오면서 두 번이나 길을 헤맸다고 했죠."


 소린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좀 전까지 빌보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재밌는 수작질을 부리는군."

"네?"

"내 인터뷰 기사를 꽤나 열심히 읽은 모양이야."


 소린이 빌보의 눈앞으로 훅 다가와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철강회사를 이어받아 경영하는 일에는 당연히 많은 반발이 따랐다. 소린은 그들을 잠재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현장에서 직접 뛰며 시야를 넓혔고, 그의 거친 손은 바로 그 증거였다. 소린이 대표이사자리에 오르자 그의 일화는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졌고, 그의 방향감각의 부재는 젊은 CEO를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소재로 종종 쓰이고는 했다. 

 소린은 자신이 잠시나마 빌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 흥미를 느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꿈 이야기를 듣자 그에 대한 흥미가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접근하고 싶어 수작을 부리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 접근이 섹슈얼한 것이든, 비즈니스적인 것이든 간에.


 "유감이지만 당신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뭐, 꿈 운운하는 건 조금 창의적이었네."


 소린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빌보를 바라보고는 냉정하게 뒤돌아섰다. 소린은 자신이 생각보다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장 충격을 받았다.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거지? 소린의 시야에 테이블에 정성스럽게 구워져 놓여있는 쿠키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쿠키를 집어 들어 살펴보고는 기분 나쁜 듯이 쿠키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빌어먹을 도토리잖아? "


 소린에게는 도토리 알레르기가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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