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Hobbit)/In Dreams(完)

[소린빌보] In Dreams (4)

In Dreams - 4 







 꿈속의 소린은 배신감에 휩싸여있었다. 금방이라도 빌보를 닮은 이 작은 남자를 성벽 아래로 밀어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그가 내게 이럴 수 있는지 깊은 분노가 몸속에서부터 끊임없이 솟구쳤다. 소린은 빌보가 무언가를 훔쳐갔다며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꿈속의 빌보를 좀도둑이라고 부르며 화를 냈다. 소린은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혼란스러운 기분에 끊임없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꿨던 꿈속에서는 빌보를 그렇게 애잔하고 아련하게 대하더니 오늘은 그를 비난하며 죽이려는 꿈을 꾸다니. 소린은 카운셀러를 찾아서 심리상담을 받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린, 예지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네?"


그리고 오늘도 생뚱맞은 말로 아침 인사를 시작하는 소린을 보며 발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한 번 빌보를 만난 것으로는 이 젊은 CEO의 혼란이 정리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또 한 번 필요하지 않은 모임을 주최해야 할 것 같았다. 발린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소린의 맥락 없는 질문은 계속됐다.


"경비를 강화하는 게 좋겠어. 어쩌면 좀도둑이 들지도 모르니까."

"소린.. 아르켄스톤의 보안은 세계 제일이에요. 좀도둑이 들어올 틈이 없다고요."


발린은 소린의 걱정을 가볍게 물리치고, 보나 마나 아침을 거르고 출근했을 그를 위해서 따뜻한 원두커피와 곱게 포장된 에그타르트를 올렸다. 소린은 그제야 엉뚱한 사담을 관두고, 서류를 살펴보며 일과를 시작했다. 언제나 한 가지 일을 하는 법이 없는 그는, 서류에 시선을 둔 채 손만 뻗어서 에그 타르트를 집어먹었다. 다행히 입맛에 맞았는지, 연달아서 다섯 개를 입에 넣고 씹다가 발린을 향해 물었다.


" 이건 어디서 사온 거지? 전에 먹던 것과 다른데?"

"글쎄요. 드왈린 말로는, 포장된 상태로 누가 맡기고 갔다고 하던데요."

"..나쁘지 않군" 


발린은 아무 말 없이 에그타르트를 몇 개 더 챙겨왔다. 다행히 아주 넉넉한 양의 에그 타르트가 상자에 남아있었다.



 소린은 늘 바빴지만, 그날은 유독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에 먹었던 에그타르트가 전부였다. 생산라인에 생긴 트러블을 해결하고 난 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소린은 이사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공들여서 작업하던 새로운 사업에 관한 중요한 기밀이 들어있는 USB가 사라진 것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미 퇴근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있었지만, 회사의 모든 보안관계자들이 소집되었다. 보안팀에는 잔뜩 비상이 걸렸고, 그들은 모든 방문기록과 CCTV를 뒤져서 그날 방문했던 모든 사람을 확인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지나, 마침내 회사 내부인이 아닌 누군가가 소린의 이사실 근처에 접근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들은 바로 그의 주소를 섭외하고 그를 찾아내서 회사 보안실로 끌고 왔다.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다는 소식에 소린은 보안실로 한달음에 달려왔고, 용의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꿈속에서처럼 배신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보안실 의자에 엉거주춤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있는 사람은 빌보 배긴스였다. 빌보는 모처럼 아무 일이 없는 한가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자신을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으니, 그의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다짜고짜 자신을 산업스파이 취급하며 의심하는 아르켄스톤의 보안요원들에게 열심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빌보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산업기밀을 빼돌리려고 접근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빌보가 소린을 처음 보자마자 엉뚱한 소리를 하며 접근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의심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빌보는 그런 그들에게 꿈이니 뭐니 설명해봤자, 자신이 가야 하는 곳이 경찰서가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바뀔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빌보를 더욱 절망스럽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마치 애인이 양다리를 걸쳤다는 사실을 안 사람처럼 절망스러운 얼굴을 한 소린이 빌보가 앉아있는 보안실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 소린. 혹시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난 산업스파이 같은 게 아니에요." 

빌보는 단호하게 말해보았지만, 소린의 구겨진 얼굴은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 회사에는 뭐하러 찾아왔었던 거지? 그것도 내 사무실까지?"



소린은 무겁게 내리깐 목소리로 빌보를 향해 물었다. 보안관계자들에게도 몇 번이나 들었던 질문이었지만, 차마 자기 입으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다가는 진짜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게다가 소린의 저 배신당한듯한 표정이라니. 빌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쪽이든 빌보에게 있어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는 창피를 당하는 쪽이 낫겠지. 빌보는 한참을 갈등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에그타르트."

"뭐?"


소린이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빌보는 차마 소린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푹 숙이고는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행사 때 남은 에그타르트를 가져다주러 왔던 것 뿐이에요. 못믿겠으면 CCTV를 다시 확인해봐요"


 빌보는 목덜미에서부터 귀까지 온통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안관계자들은 혹시 그 에그타르트에 무언가 수상한 독극물이라도 탄게 아니냐며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소린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아침에 먹었던 에그타르트는 전혀 문제없이 소린의 뱃속에서 소화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단지 지나치게 맛있는 에그타르트였을 뿐이었다. 빌보가 굳이 소린에게 에그타르트를 전해주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대충 그의 시뻘게진 얼굴을 보니 짐작할 수 있었다. 빌보는 아직도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겨우 벗으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USB는 생산현장에 벗어두고 왔던 소린의 재킷 속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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