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Hobbit)/오만과편견AU(完)

[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1)




 재산 좀 있는 독신 드워프에게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 진리이다.


 샤이어라는 평화롭고 조용한 호빗마을에 자리잡은 백엔드에는 간달프라는 마법사가 다섯 호빗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호빗 기준으로 이미 혼기를 진작에 놓친 빌보 배긴스와 그의 조카 프로도 배긴스. 그리고 그들의 친척인 메리와 피핀,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형제처럼 지내는 샘 와이즈 갬지까지. 간달프는 그들의 사랑스러운 다섯 호빗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도록 백엔드에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가족같이 지내고 있었다. 비록 간달프는 너무 낮은 천장에 대해 꽤 자주 불평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온화하고 유쾌한 마법사였다. 빌보는 이미 자신의 혼인은 포기하고, 평생 조카들을 돌볼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일보다 조카들의 혼사에 유난한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었다.

 

" 간달프, 들었어요? 브리에 드워프들이 방문한대요!"

" 드워프들이  신붓감을 찾아 방문하는 일 정도로 새삼스럽게 왜 또 호들갑인가. 빌보 배긴스."

"간달프, 이번엔 다르다구요. 두린가의 왕족들이예요! 그들이 되찾은 에레보르의 어마어마한 황금을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독신이라구요! 그 후계자 두명중 한명이 우리 조카들중 하나와 결혼할 수도 있잖아요!"  


 호들갑스러운 빌보의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프로도와 메리 피핀, 그리고 정원을 손질하던 샘마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도 브리에 자리잡은 드워프들을 성대한 파티를 열 것이 분명했고,  샤이어 밖을 나가본 적이 거의 없는 호빗들에게는 간달프의 안내가 간절한 상황이었다. 어느덧 간달프의 앞으로 다가온 메리와 피핀이 신이 나서 말했다.


 " 간달프, 저희를 파티에 데려가주세요. "

 " 맞아요, 우리는 벌써 몇 달이나 즐거운 파티에 목말라있다구요." 

 

 그리고 간달프는 그의 작은 호빗친구들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 너무 그렇게 닥달하지 말게 작은 친구들. 이미 며칠 전에 그들을 만나 초대장을 받아왔지. " 


 간달프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작은 호빗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백엔드를 뛰어다녔다. 



 브리의 커다란 한 저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인간과 호빗 드워프들이 한데 얽힌 그 장소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단연 빌보네 호빗 조카들이었다. 빌보는 자신의 조카들 중 가장 아끼는 프로도를 향해 흐뭇하게 말했다.


 " 오늘 밤  너를 보고도 반하지 않는 인간이나 호빗, 드워프가 있다면 난 확실히 말할 수 있단다. 그들의 미적감각이 엉망이라고."

 " 오 삼촌.. 삼촌은 절 너무 좋게보는 경향이 있어요. "

 " 무슨 소리, 물론 드워프들은 수염이 나지 않은 사람을 못생겼다고 생각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혹여 어떤 드워프가 너를 향해 그런 생각을 한다면 난 당장 그들의 멱살을 잡아 흔들 수도 있단다."

 " 부디 드워프들이 삼촌에게 그런 자신들의 생각을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삼촌이 그들과 싸워서 내동댕이 쳐지는 모습을 차마 저는 볼 수 없을테니까요." 


 한참  파티가 진행되는 중 세명의 드워프가 파티장 한 가운데로 등장했다. 피핀이 옆에 서있는 메리를 향해 속닥거렸다. 


" 저 사람들이 두린가 왕족이야? "

" 저기 인상 쓰고 있는 드워프가 그 유명한 참나무방패 소린이고,  옆에는 그의 후계자이자 조카인 필리와 킬리라나봐."


 빌보 역시 그들의 말을 듣고 열심히 세 드워프의 얼굴을 탐색했음. 과연 저 중에 누구를 자신의 조카와 짝지워주는게 좋을까 하고. 빌보의 눈이 소린과 마주쳤고, 그는 잠시 빌보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소린은 이런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드워프들이 후사를 보기 어렵다고는 해도, 두린의 왕가에서 호빗 따위와 혼사를 맺기 위해 이 먼곳까지 나와 모르는 이들의 품평거리가 되어야 하다니. 하지만 필리와 킬리는 그런 불편한 삼촌의 마음도 모른채 들떠서 자기들끼리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 예쁘고 귀여운 호빗들이 많은데? 킬리? "

 " 생각했던 것 보다 나쁘지 않아."



 그리고 그 틈을 타 잽싸게 빌보가 자신의 조카들의 손을 이끌고 세 드워프 앞으로 달려갔다.


" 만나뵙게 되서 반갑소. 나와는 며칠전에 인사를 나누었고, 자.. 이쪽은 샤이어의 호빗, 빌보 배긴스, 프로도 배긴스, 메리아독 브랜디벅, 페레그린 툭, 샘 와이즈갬지."  

 

 간달프가 두린의 세 드워프를 향해 호빗들을 소개했다. 


" 빌보, 이쪽은 두린왕가의 세 드워프라네. 소린 오큰실드, 그리고 그의 조카인 필리와 킬리."


 소개를 마치자마자 빌보가 경쾌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재잘거렸다.


 "브리는 마음에 드시나요? 시간이 되시면 샤이어도 꼭 한 번 방문해주세요, 티타임이어도 좋고, 식사시간이어도 상관 없어요. 당신들이 원하시면 갓 구운 생선요리를 5종류 이상 준비할수도 있어요."


 빌보의 말에 킬리와 필리가 유쾌하게 반응했다. 다섯종류나! 중앙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 메리와 피핀이 신이 나서 춤을 추러 달려갔다. 그리고 필리와 킬리, 프로도와 샘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춤을 추는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나이가 비슷한 까닭인지, 빌보의 조카들과 드워프 후계자들은 금새 어울려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마치 몇 년은 알아온 친구인 것처럼 허물없이 어울리는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빌보와 달리, 소린은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한쪽 구석에 서있을 뿐이었다. 빌보는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소린을 향해 춤을 권하기로 했다.


 " 소린, 혹시 춤 좋아하시나요? "

 " 아니.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다니. 최악이군. " 


 순식간에 무안해진 빌보가 머리를 긁적이다 조용히 소린의 곁에서 떠나 춤추고 있는 다른 호빗들을 찾아갔다. 빌보는 웬만한 이들과 허물없이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의 소유자였으나, 소린과 친해지는 건 꽤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사람들 틈에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며 조카들을 지켜보던 빌보의 뒤쪽으로 소린과 필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이곳의 호빗들을 정말 매력적이고 귀여워요. 특히 프로도는 내가 본 호빗중에 가장 아름다운 호빗이예요. "

 " 확실히 그는 호빗치고는 봐줄만하더군."

 " 빌보는 어때요 삼촌?  그 역시 밝고 유쾌한 호빗 같던데."

 "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는 아니다. 난 혼기를 놓친 호빗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니, 너도 내 일에 신경쓰느라 시간낭비 하지 말고 즐거운 시간이나 보내거라."


 소린의 무례한 말에 빌보는 잠시 아연실색했으나, 어차피 자신 역시 드워프와의 혼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혼기를 놓친,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인 것은 사실이었으니. 하지만 그의 오만한 태도는 빌보를 조금 불쾌하게 만들었다. 파티가 점점 무르익고 필리와 프로도가 몇 번이고 함께 춤을 추는 것을 보며, 빌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빌보는 춤을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필리를 향해 다가가 프로도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우리 프로도는 언제나 샤이어의 인기인이었죠. 많은 호빗들이 우리 프로도에게 편지며 갖가지 선물을 보냈지만, 그런 선물들은 사실 그다지 우리에겐 별 의미가 없었죠." 


 빌보의 말에 소린의 눈빛이 흥미로운 빛을 띄었다.


 " 어떤 보물들을 보내왔지?"

 " 뭐.. 예쁜 꽃부터 황금으로 만들어진 브로치,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 등등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보물들이었지요. "


 소린은 빌보가 묘사하는 보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호빗들의 보물이라고 해봤자 드워프의 보물들에 비하면 허접하고 비루할 것이 분명했으니. 그런 허술한 보물이 아니라 드워프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물을 선물로 받았더라면 빌보가 자랑하는 그의 조카는 단숨에 청혼을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 보물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럼 어떤 행동을 하면 호빗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소린의 말에 빌보가 짖궂은 표정으로 비꼬듯이 답했다.


 " 춤이요. 파트너가 못 봐줄정도만 아니라면요."




  흥겨운 파티가 끝나고, 호빗들은 그들의 아늑한 집으로 돌아왔다. 빌보는 피핀과 메리 샘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간달프가 잠드는 것까지 확인하고, 집안 곳곳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나 프로도와 함께 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즐거운 파티의 여운이 아직도 남았는지, 프로도의 두 뺨음 여전히 붉게 상기된 채였다.  프로도가 누워있는 침대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누은 빌보가 싱글싱글 웃으며 자신의 사랑스러운 조카를 바라보았다.


" 필리와 킬리는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드워프예요."

" 그래. 특히 필리는 상냥함까지 갖춘 훌륭한 신랑감이더구나."

" 이런, 삼촌. 나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난 그저 순수한 우정으로서의 호감을 말하고 있는거라구요." "오.. 나의 프로도.. 젊고 아름다운 시절은 금방 지나간단다. 너는 지금 훌륭한 반려를 맞이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고, 그들의 조건은 신랑감으로서 더없이 완벽하지."

 " 맞아요 삼촌. 하지만 전.. 재산이 결혼의 조건이 아니라고봐요. 진정으로 열렬하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 결혼을 위한 유일한 조건이죠. 삼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


 어린 프로도의 말에 빌보는 작게 한숨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 그러니 내가 아직까지 노총각으로 지내고 있겠지. 넌 아직 너무 어려서 다른 이들을 분별해내는 안목이 없으니 걱정이다. 프로도. 세상은 니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다 선량한 건 아니란다. 넌 모두를 너무 착하게 보는 경향이 있잖니."

 " 하지만 삼촌, 그 드워프는 아니예요. 소린 오큰실드. 삼촌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

 " 그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호빗들을 향해 오만하게 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뭐 아무렴 어때. 이젠 나와 마주칠 일도 없는 드워프인데."


 빌보는 프로도를 향해 상냥하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켜져있던 방안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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