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4)
결과으로 말하자면, 그날의 파티는 최악이었다. 그날 빌보의 유일한 춤 상대였던 소린 오큰실드는 자신의 파트너의 춤을 칭찬한다던지, 두 번째 춤을 신청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다. 그는 오히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무례하게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메리와 피핀은 용 모양 폭죽을 터뜨린 걸로는 부족했는지 더 거대하고 재밌는 폭죽이 없나 간달프의 폭죽상자를 뒤져댔다. 도대체 간달프는 무슨 생각으로 실내에서 치러지는 파티에 폭죽상자를 들고 온 건지. 설마 메리와 피핀이 그걸 얌전히 둘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평소 파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 종일 구석자리에 앉아 드워프들이 지나치게 프로도를 귀찮게 한다며 불만가득한 얼굴로 주변 분위기마저 망치고 있었고, 프로도는..
" 오 나의 프로도."
빌보는 그날, 유일하게 최악이 아니었던 것은 프로도의 빛나는 아름다움이었다고 회상했다. 필리와 킬리는 프로도가 자신들 외에 다른 누구와도 춤출 수 없게 만들 작정인 것 같았다. 계속되는 두린가의 형제의 춤 신청에 프로도의 얼굴이 조금 지쳐보이기는 했지만, 그날 프로도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얄미운 사촌 로벨리아가 다가와 프로도가 두 드워프 후계자를 귀찮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는 말도 안 되는 험담을 내뱉었지만, 빌보는 그녀의 말을 단박에 부정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프로도가 필리와 킬리를 차버린다면 빌보는 조카의 마음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럼 프로도의 짝으로 또 어디서 누구를 찾아야 할지.. 빌보의 작은 머릿속이 새로운 고민으로 가득 찼다.
빌보의 고민은 며칠간 이어졌다.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신선한 계란과 베이컨 요리를 우물우물 입안에 구겨 넣으면서도 빌보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빌보를 물끄러미 보고있던 스마우그와 눈이 마주쳤다. 스마우그가 입을 열었다.
" 빌보 배긴스. 자네와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만."
" 오, 이런. 용은 안돼."
" 뭐?"
" 아.. 아니예요."
빌보의 얼굴이 잠시 창백하게 질렸다. 스마우그가 설마 프로도에게 청혼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분명 난쟁이 왕족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그와 결혼을 했다가는 불쌍한 프로도는 며칠도 안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빌보가 어떻게든 용의 청혼을 막아야만 했다. 빌보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다들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메리와 피핀이 키득거리며 가장 먼저 식탁에서 일어나, 프로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샘 역시 프로도를 따라 일어났고, 마지막으로 앉아있던 간달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빌보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현명한 선택을 내리길 바라네."
" 무슨 소리예요, 간달프?"
빌보가 되물었으나 간달프는 말없이 빌보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리를 비워줄 뿐이었다. 식당에 스마우그와 빌보, 단 둘만이 남았다. 그제서야 빌보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프로도와의 결혼을 수락하지 않으면 화가 난 용이 불을 내뿜어 자신과 집을 홀랑 태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이 숯덩이가 되더라도 사랑스러운 조카를 용의 신부로 보내는 것 만큼은 막아야 했다. 스마우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친애하는 빌보 배긴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당신을 장래의 배우자로 삼기로 결정했다."
"프로도는 안되요."
스마우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빌보가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스마우그와 빌보는 동시에 말했다.
" 뭐? "
" 뭐라구요? "
" 난 프로도가 아니라 네게 청혼을 하고 있다. 빌보 배긴스."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상황에 빌보의 머릿 속이 바삐 돌아갔다. 그리고 스마우그가 품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 빌보의 눈앞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르켄스톤. 내 구혼을 받아들인다면 이걸 네게 주도록 하지."
빌보는 천천히 신비롭게 빛나는 하얀 돌을 바라보았다.
" 이건.. "
스마우그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빌보와 아르켄스톤을 보며 웃었다. 지금까지 아르켄스톤에 매료되지 않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소린 오큰실드 조차도 아직까지 스마우그에게서 아르켄스톤을 되찾아가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혹여 그가 이 조그마한 호빗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 그 호빗을 자신이 먼저 가로챘을때 그가 느낄 절망이 얼마나 클지, 생각만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한참 진지한 표정으로 아르켄스톤을 보던 빌보가 마침내 말했다.
" 이건 새로 꾸민 정원 화단에 장식 돌로 쓰면 좋겠군요. "
스마우그의 표정이 구겨졌다.
"장식 돌? 지금 외로운 산의 심장을 너의 보잘것없는 화단에 장식 돌로 쓰겠다고 했나?"
스마우그가 어이없어하며 묻자 빌보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 보잘 것 없다뇨? 샘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꾸민 화단인데. 그는 정말이지 성실하게 정원을 돌본다구요. 게다가 전 당신과 결혼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스마우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감히 보잘 것 없는 호빗이 내 청혼을 거절하다니. 장담하는데 앞으로 너에겐 어떤 다른 결혼제의도 없을 것이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지. 만일 나를 안달나게 하고 싶어서 거절하는 척을 한것이라면, 용서해주는 것은 단 한번 뿐이다."
" 이봐요 스마우그씨. 전 용을 안달나게 할 정도로 대담한 호빗이 아니예요. 저는 용과 결혼할 마음이 없다구요. 물론 제가 아니라 제 조카들도 용의 신부로 보낼 수는 없어요."
스마우그의 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보물 때문인가? 외로운 산의 보물은 비록 난쟁이들에게 빼앗겼지만, 아직 내게는 많은 금과 보물이 가득찬 몇 개의 산들이 남아있다."
"전 보물이 필요하지 않아요. 내 말은.. 당신이 가진 어떤 것으로도 날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뜻이예요. 부디 제 거절을 양해해주세요."
빌보가 아르켄스톤을 쥔 스마우그의 손을 밀쳐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식당을 벗어났다. 빌보가 문을 열자 몰래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호빗들이 우르르 넘어졌고, 빌보는 그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빠르게 백엔드를 뛰쳐나갔다. 빌보는 혹여 용이 쫓아와 자신을 불태울까 기겁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아래로 내달렸다. 한참을 도망치던 중, 브리 방향에서 오는 듯한 이웃의 호빗이 빌보를 알아보고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
" 빌보! 빌보!! 소식 들었나? "
" 무슨 소식이요?"
빌보는 설마 용이 자신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이 벌써 소문이 난 건가 두려워하며 물었다.
" 두린가의 드워프들이 브리를 떠났다고 하더군."
" 뭐요?"
"그들은 이 곳에서 마땅한 신붓감을 찾지 못한 모양이야. 프로도가 그 젊은 드워프 후계자에게 차였다고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났다네."
" 이런 빌어먹을."
빌보는 다시 몸을 돌려 허겁지겁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앞에는 프로도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서있었다. 빌보가 프로도의 편지를 뺏어 읽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킬리가 에레보르를 그리워해서 돌아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나 그게 핑계라는 것쯤은 빌보의 작은 머리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필리를 프로도의 짝으로 맺어주려던 빌보의 작은 소망이 산산조각났다. 모두가 결혼에 실패한 프로도를 동정하겠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프로도가 드워프왕가의 신부로 갈것이라고 소문이나 내지 말 것을. 이 소식을 듣는다면 로벨리아가 가장 좋아하겠지. 빌보는 침통한 표정으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스마우그는 어디론가 떠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빌보의 책상 위에는 아르켄스톤이 남겨져 있었다.
" 용이라는 작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군."
머리가 한결 더 복잡해진 빌보는 한 손으로 뒷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고는 아르켄스톤을 집어들어 자신의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넣었다.
<계속>
'호빗(Hobbit) > 오만과편견AU(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6) (0) | 2015.02.08 |
---|---|
[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5) (1) | 2015.02.08 |
[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3) (0) | 2015.02.08 |
[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2) (0) | 2015.02.08 |
[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1) (0) | 201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