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2)
그로부터 며칠이 흐르고 백엔드에 반가운 편지가 날아들었다. 필리로부터의 편지였는데, 그는 프로도를 자신이 머무르는 브리의 별장으로 초대하기를 원했다.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고 누구보다 기쁜 비명을 지른 것은 빌보였다. 빌보는 당장에라도 프로도가 난쟁이 왕가의 왕자비라도 된 듯이 기뻐하며 프로도의 짐을 대신 챙겼다.
" 삼촌, 마차를 빌려타고 가도 되나요? "
" 무슨소리. 조랑말을 타고 가야지."
" 조랑말이요?"
빌보는 슬슬 먹구름이 끼어가는 하늘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빌보의 뜻대로 프로도가 조랑말을 타고 브리로 가는 도중에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졌다. 아니나다를까 그 길로 감기에 걸린 프로도는 병이 나을 때까지 꼼짝없이 드워프들의 집에 머물러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빌보는 자신의 계략이 성공했음에 쾌재를 불렀고, 간달프는 혹여나 프로도의 감기가 악화되기라도 하면 어쩔꺼냐며 빌보를 나무랐다.
"바보같은 말 말아요. 튼튼한 호빗에게 이정도 감기는 별것도 아니라구요. 따뜻한 수프와 과일차만 제때 먹이면 금방 낫는데, 드워프들이 프로도를 위해 그 정도 간병도 못할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빌보의 예상과 달리, 드워프들은 감기에 걸린 호빗에게 도움이 되는 간병을 전혀 하지 못했고, 프로도의 감기가 며칠째 낫지 않는다는 편지를 받고나니 빌보도 그의 조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큰일이 날 것 같아, 빌보는 다급히 감기에 좋은 약재와 차, 허브 등을 챙겨 샤이어를 나섰다. 프로도가 조랑말을 타고 간 까닭에 빌보는 브리까지 부지런히 걸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에 브리에 도착했을때 빌보의 모습이 거지꼴과 다름없었다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소린은 별장의 문을 열자마자 지저분한 모습의 호빗을 만날 수 있었다.
" 좋은 아침이네요."
" 밤새 걸어서 이곳까지 온건가 호빗?"
" 뭐.. 이 정도 걷는 건 호빗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보다 프로도는 어디있죠? "
소린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빌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호빗의 발은 과연 걷기에 꽤 튼튼해보였으나, 먼 길을 걸어온 탓인지 엉망진창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빌보는 소린이 자신을 관찰하든지 말든지, 메고온 짐들을 바리바리 풀어 헤치며 소린에게 물었다.
" 혹시 주방을 써도 괜찮을까요? 감기에 걸린 호빗에게는 영양가있는 따뜻한 음식과 신선한 과일로 담근 과일차가 필요하거든요. "
달그락거리며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는 호빗은 별장의 모든 드워프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빌보의 극진한 간호덕분에 프로도의 병세는 차츰 나아지고 있었고, 빌보가 주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여분의 간식을 하루에 몇 번이나 만들어오는 통에 필리와 킬리, 소린은 전에는 먹어본 적 없던 호빗의 간식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도가 잠든 틈에 거실로 내려온 빌보는 조용히 한쪽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린은 한쪽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고, 필리와 킬리는 한쪽 구석에 앉아 벽난로를 쬐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꾸벅꾸벅 졸고있는 상태였다. 한참동안 묘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 호빗들은 모두 자네처럼 집안일과 요리에 능숙한가?"
" 글쎄요. 일단 내 조카들 중에선 누구도 나만큼 요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죠."
" 자네는 꽤 재치있는 말투와 활발한 성격, 그리고 훌륭한 요리솜씨를 지닌 듯 한데 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지?"
또다시 자신의 결혼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빌보는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탁소리가 나도록 읽고있던 책을 세게 덮었다. 노골적인 항의의 표시였다.
"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그런 훌륭한 왕국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아직까지 반려자를 맞이하지 않았죠? 당신과 결혼하려는 드워프들이 줄을 섰을텐데요. "
소린 역시 쓰고있던 편지를 멈추고 펜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호빗의 눈을 도전적으로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 에레보르를 되찾은건 지금으로부터 고작 몇년 전이었다. 그 전까지 우리는 이곳 저곳에 뿔뿔이 흩어져 정착해서 힘들게 살아왔지. 그들을 위해 하루 빨리 고향을 되찾는 것 만이 내가 가진 목표였으며, 지금은 내 결혼보다는 조카들이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교양있고 훌륭한 성품을 가진 반려자가 필요하지. 튼튼한 신체부터 폭넓은 독서를 통한 지식, 많은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다정함도 필요하겠지. 또한 전쟁이나 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도 필요하다."
소린은 숨도 쉬지 않고 조카들의 배우자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고, 빌보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섞인 말투로 과장되게 대꾸했다.
" 세상에. 그런걸 전부 갖춘 이가 과연 있을까요? 그렇게 완벽하고 결점이 없는 사람이라니. 생각만해도 무섭군요."
" 난 누군가의 결점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지. 만일 누군가 나의 분노를 산다면, 용서받는게 쉽지는 않을테다."
" 과연.. 당신답군요. 하지만 조카들을 향한 애정에는 나역시 공감해요. 나도 프로도가 누구보다 그를 사랑해주는 다정한 짝을 만나기를 바라니까요. "
조카들에 관해서는 빌보 역시 소린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빌보의 말투는 좀전보다 훨씬 누그러져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빌보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소린의 눈빛 또한 흥미로운 빛으로 변했다. 빌보는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소린의 시선에 잠시 머쓱해하며 덮었던 책을 다시금 펼쳤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문들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브리의 드워프 별장으로 간달프와 메리, 피핀, 샘이 우르르 들어섰다.
간달프는 난쟁이들의 별장도 천장이 낮기는 마찬가지라고 불평을 하며 응접실에 마련된 작은 소파에 몸을 구겨 앉았다. 그 옆으로 메리와 피핀 샘이 쪼르르 나란히 앉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드워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프로도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웠던 예전의 파티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피핀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소린을 향해 외치듯이 말했다.
" 미스터 소린! 이 별장에서 다시 한 번 파티를 열 계획은 없으신가요?"
메리가 질세라 끼어들어 피핀의 말을 거들었다.
"기왕이면 저번보다 많은 술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장소도 더 넓으면 좋고. 솔직히 저번 파티장소는 마음껏 춤추기에는 너무 좁았거든요."
"메리, 피핀!"
조카들의 다소 무례한 언동에 주의를 주듯이 빌보가 짧게 그들의 이름을 외쳤다. 샘은 한시라도 빨리 프로도를 만나고 싶은건지 얌전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쉴새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며, 낮은 천장에 대한 간달프의 불평 또한 여전히 끊이지 않는 상태였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어느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 호빗의 장점이고, 빌보 역시 그러한 호빗들의 분위기를 좋아하기는 했으나.. 아마도 이 꼬장꼬장한 드워프에게 이런 모습들은 썩 좋아 보이지 않겠지. 빌보가 살짝 곁눈질로 소린의 표정을 살피자 소린 역시 빌보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와서, 순간 서로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빌보는 그를 향해 머쓱하고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소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고, 킬리와 필리만이 호빗들의 제안을 유쾌하게 받아들여 며칠 후 그들의 별장에서 또 다른 파티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간달프와 작은 호빗들이 샤이어로 돌아가기 위해 차례로 마차에 올라탔다. 이제는 깨끗하게 감기가 나아 예전과 같은 생기어린 눈빛을 회복한 프로도가 마지막으로 마차에 남은 한 자리를 차지했다. 마차에는 더 이상 누군가 탈만한 자리가 없었고, 빌보는 프로도가 처음 드워프들을 방문할때 타고왔던 조랑말을 타고 가기로 했다. 빌보의 조카들이 필리와 킬리에게 작별인사를 건넸고, 빌보 역시 소린을 향해 예의바른 인사를 했다.
"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미스터 소린. "
소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 했고, 빌보는 조랑말 위에 올라타려 했다. 하지만 조랑말이 그의 키보다 큰 까닭에, 빌보는 꼴사납게 엉거주춤한 포즈로 미끄러졌고, 그의 뒤로 킬리의 풉!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빌보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조랑말의 등 위로 올라타려 애쓰던 그 순간, 빌보의 몸이 부웅 하고 공중위로 떠올랐다. 빌보가 놀라 뒤돌아보니 소린이 빌보의 허리를 잡은 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조랑말 위로 그를 들어올려 살포시 앉혀주고 있었다. 빌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 고마워요 소린."
그러나 소린은 약간은 화난 듯한 표정으로 휙 돌아서 인사에 대한 답변도 없이 그의 집안으로 들어갔고, 빌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드워프의 속마음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 빌보, 오늘은 손님이 올테니 저녁식사를 넉넉하게 준비해두게."
빌보와 프로도가 샤이어의 백엔드로 돌아온지 이틀 쯤 지난 어느날, 간달프가 말했다. 호빗들의 집에는 자주, 그리고 갑작스럽게 손님이 찾아오는 일이 많았기에 빌보는 대수롭지 않게 이미 챙기고 있던 음식재료 바구니 위에 감자 몇 개를 더 얹었다. 그러나 간달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그 정도로는 택도없네 빌보. 오늘 오는 손님은 어마어마한 대식가거든. 게다가 채식을 좋아하지 않으니, 고기를 더 준비하는 편이 좋을걸세."
" 이런.. 고기라면 얼마나요..? 칠면조 한 마리 정도면 될까요?"
" 아니 최소한 일곱 마리 정도. 거기에 돼지도 한 마리 준비하는 게 좋겠군."
간달프의 말에 빌보가 깜짝놀라 작은 숨을 들이키며 물었다.
" 간달프, 손님은 한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 그렇지."
" 도대체 어떤 손님이길래 그만한 양을 혼자 먹어치운다는 거죠? 제가 아는 어떤 인간이나 드워프도 한끼 식사로 그만큼이나 많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구요."
"오.. 빌보. 그는 인간도 드워프도, 호빗도 아니라네. 그는.. "
간달프는 잠시 뜸을 들이며 빌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의 작은 호빗이 놀라서 기절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손님의 정체에 대해 말했다.
" 그의 이름은 스마우그. 용이라네."
저녁이 되고 빌보는 초조한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쉴새 없이 대문 앞을 오락가락거렸다. 샤이어에 용이 방문한다니, 빌보는 다른 호빗들이 기절초풍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과연 빌보의 작은 집 대문으로 용이 들어올 수는 있을까, 그와 인사를 하자마자 용의 화염에 숯덩이가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빌보의 초조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달프는 느긋하게 거실에 앉아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똑똑똑- 그리고 마침내 빌보의 귀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보는 긴장해서 손을 바들바들 떨며 조심히 문을 열었고, 문 앞에는 뜻밖에 말쑥한 모습의 인간 남자가 서있었다.
" 어.. 실례지만 집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 충분히 잘 찾아온 것 같군. 네가 그 호빗이군. 빌보 배긴스."
" 제가 빌보 배긴스인 건 맞지만.. 오늘 이 곳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건 인간이 아니라 용이예요."
그리고 남자는 쓰고있던 모자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며 , 빌보의 허락도 없이 그의 작은 집안으로 허리를 숙이며 들어섰다.
" 내가 바로 그 용이지."
" 오, 스마우그."
간달프가 반가운 듯이 스마우그를 맞이했다. 빌보는 영문도 모른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 우선 그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모자를 줏어 정리하기로 했다.
메리와 피핀, 프로도와 샘, 그리고 빌보까지. 작은 호빗들은 자신들의 식사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들의 손님이 어마어마한 양의 요리들을 해치우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빌보는 머릿속으로 창고에 남은 고기가 얼마나 더 있는지를 계산 했고, 언제나 겁이 없는 피핀이 스마우그를 향해 제일 먼저 질문을 건넸다.
" 정말로 당신이.. 그 유명한 스마우그인가요?"
스마우그는 여전히 식사를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 킬리가 말하길, 그들의 삼촌인 소린 오큰실드가 용을 물리쳐서 에레보르에서 쫓아냈다고 하던데요?"
" 피핀!!"
빌보가 놀라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며 피핀의 이름을 외쳤다. 스마우그는 잠시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찡그렸으나, 이내 다시금 자신의 식사에 전념하며 말했다.
" 비록 외로운 산은 그들이 되찾아갔지만, 가장 중요한 산의 심장은 여전히 내게 있지."
빌보는 스마우그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쭈뼛 다시 식탁의자에 앉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 산의 심장..이라뇨?"
" 아르켄스톤. 그게 내게 있는 한 참나무방패 소린은 결코 내게 이긴 것이 아니다."
소린의 이름이 나오자 빌보는 잠시 움찔하며 스마우그를 바라보았음. 그런 빌보의 행동을 본 스마우그가 잠시 식사를 멈추고 빌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넌 참나무방패 소린에 대해 잘 알고있는 모양이군."
" 아뇨.. 전 그저.."
빌보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메리가 용감하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그는 한마디로 재수없는 난쟁이죠."
" 맞아요, 그가 우리 삼촌에 대해 한 말을 난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는 미스터 배긴스가 혼기를 놓친 늙고 매력없는 호빗이라고 말했다구요."
피핀과 샘 역시 소린의 험담에 가담하자 빌보가 발끈하며 말했다.
" 그가 나를 향해 혼기를 놓친 호빗이라고 말한 건 맞지만, 늙거나 매력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어 샘. 그저.."
빌보가 약간 기가 죽어 말끝을 흐리자, 스마우그가 그의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흥미롭게 빌보를 바라보았다.
" 그저.. 자신의 마음을 끌 정도가 아니라고 했을 뿐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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