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빌보] 오만과편견AU (3)
빌보의 집에 며칠동안 대식가 손님이 머무르는 동안, 빌보에게는 새로운 고난이 닥쳐왔다. 예전엔 혼자서 장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이제는 프로도나 샘, 때로는 메리와 피핀까지 식료품을 옮기는 것을 거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수레를 하나 더 빌릴 수 있었던 덕에, 프로도와 샘만 데리고도 식료품들을 넉넉하게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다.
" 저 손님이 만일 몇 달 동안 이 곳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파산하고 말거야. 프로도."
근심어린 빌보의 걱정에 프로도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 간달프가 말하길, 그는 다음주 중에 돌아갈 거라고 하네요. "
" 듣던 중 다행이군. 그런데 그는 뭐하러 샤이어를 찾아온거지?"
" 글쎄요. 저도 그 이유에 대해선 듣지 못했어요."
그러자 뒤쪽에서 수레를 끌고 두 호빗을 따라오던 샘이 말했다.
" 어제 정원을 손질하다가 엿들었는데, 그는 이 곳에 반려자를 얻으러 온거래요. "
" 맙소사."
프로도와 빌보가 동시에 기겁하며 대답했다. 용의 반려가 될 호빗이라니. 누군지는 몰라도 생각만해도 가엾은 일이었다.
" 만약 누군가 용에게 청혼을 받는다면, 나는 그를 위해서 심신안정에 도움이 되는 허브차를 잔뜩 선물해줘야 할거야. 매일매일 얼마나 심장이 터질질 것 같이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야 할까. 불쌍한 호빗."
빌보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용의 청혼상대를 동정하는 동안 저 멀리서 요란스럽게 피핀과 메리가 달려왔다. 그들은 빌보의 양 팔에 매달려 그를 빙글빙글 돌리며 두서없이 시끄럽게 외쳤다.
" 삼촌, 삼촌! 삼촌은 제가 지금 하는 말을 믿지 못할거예요."
"지금 우리가 무슨 소식을 듣고온 줄 아세요?"
빌보는 자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두 조카를 애써 멈춰세우고 침착하게 물었다.
"진정하렴 애들아. 그래 도대체 뭘 보고 왔길래 이러는거니?"
" 요정이요!!"
메리와 피핀의 말에 샘과 프로도 역시 깜짝 놀라 빌보의 곁으로 다가왔다.
" 머크우드의 요정들이 이 옆에 오래된 숲에서 잠시 머무른대요!"
" 실제 요정을 볼 수 있다구요!"
" 삼촌 삼촌, 어서 저희와 함께 가요! 삼촌은 늘 요정을 보고싶어 했잖아요!"
빌보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며 들떠서 재잘거리는 메리와 피핀만큼 빌보의 마음도 두근거렸다. 그들의 말대로 빌보는 어릴때부터 요정을 실제로 만나는 것을 소망해왔다.
"하지만 식료품 수레를 집으로 가져다둬야 하는데.."
그리고 그런 빌보를 향해 샘과 프로도가 말했다.
" 이건 우리가 가져다둘테니, 삼촌은 메리,피핀과 함께 요정을 만나러 다녀오세요."
" 그래요 삼촌, 어서가요! 그들이 떠나기 전에!"
빌보는 나무 위에 올라가 아이처럼 입을 벌린 채 요정들의 행렬을 구경했다. 빌보가 이야기로만 듣고 상상했던 것 보다 요정들은 기품있고 우아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생물들이었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빌보가 좀 더 앞쪽의 나뭇가지로 몸을 옮기려던 찰나, 빌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빌보는 요정들의 행렬 한 가운데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빌보는 당장이라도 요정들이 타고 있는 말발굽에 채일 위기에 처했으나, 그들 중 한 요정이 손을 들자 모든 엘프들이 일제히 행렬을 멈춘 덕에 큰 부상을 면할 수 있었다. 빌보는 뭔가에 홀린듯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앞에 엘크를 타고 있는 고귀한 요정을 바라보았다.
" 넌 처음보는 종족이군."
" 아.. 전 호빗이예요. 이 숲을 지나면 있는 호빗마을 샤이어에서 왔죠."
빌보는 이렇게 가까이서 요정을 본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연신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한 감탄사들이 어느새 입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는데, 그 사실도 모를 정도로 빌보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 나를 향한 찬사들을 굳이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샤이어의 호빗."
빌보는 깜짝 놀라 부끄러워하며 입을 틀어막았고, 빌보의 찬사가 그리 기분나쁘지 않았는지 그 요정은 요정어로 다른 엘프를 향해 무어라 지시했다. 그리고 그 날, 황송하게도 빌보와 메리 피핀은 요정들의 손에 이끌려, 근처 강가에서 그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지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요정의 이름은 스란두일. 어둠숲의 요정왕이라고 했다. 스란두일이 들려주는 머크우드와 요정들의 이야기를 홀린 듯이 듣던 세 호빗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비추었다. 피핀이 먼저 그들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나 강건너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필리!! 킬리!! "
그리고 강건너의 필리와 킬리는 그들의 절친한 호빗들을 보고 반가워하다가, 옆에 자리잡고있는 요정의 모습을 보고 조금 곤란한 듯이 웃으며 그들의 삼촌의 눈치를 살폈다. 빌보 역시 필리와 킬리 옆에서 조랑말을 타고있 는소린을 발견하고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건넸으나, 소린은 무척 화가 난 표정으로 조랑말을 돌려 지금까지 왔던 길을 쌩하니 돌아가는 것이었다. 빌보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도대체 자신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길래 저 드워프는 매번 저런 태도를 보이는걸까. 그리고 그런 소린의 뒷모습과 빌보를 번갈아보던 스란두일이 말했다.
" 저 난쟁이와 잘 아는 사이인가 호빗?"
"잘 아는건 아니지만, 그의 별장에서 며칠 머무른 적이 있었죠.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는 늘 저에게 뭔가 화가 나있는 것 같아요."
" 나라면 난쟁이와 친하게 지내려는 헛된 노력은 하지 않겠네. 특히 참나무방패 소린이라면. "
빌보가 스란두일을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 그와 무슨 일이 있었나요?"
" 그들은 완고하고 고집불통에다 탐욕스럽기 그지없지. 자신들의 명예보다 금은보화를 더 중요시하는게 바로 난쟁이들의 습성이네."
스란두일은 무언가 기분 나쁜 것이라도 떠올리듯이 예쁜 얼굴을 찡그리고는 이어서 빌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날 오랜시간에 걸쳐 소린이 에레보르를 탈환하면 받기로 했던 요정의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난쟁이의 각종 나쁜 습성에 대해 들은 빌보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빌보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침대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는 와중에도 소린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빌보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앉았지만, 빌보는 더이상 소린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가 탐욕스럽고 나쁜 드워프가 맞는 걸로 하자. 빌보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파티의 날이 다가왔다.
이전의 파티보다 규모도 크고 훨씬 성대한 파티였다. 브리에 위치한 드워프들의 별장은 이미 온갖 손님들로 꽉 차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그 손님들 중에는 인간 드워프는 물론 호빗과 한 마법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요정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빌보는 행여 인파들 사이에서 조카들을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그들의 손을 꽉 잡은 채 간달프를 향해 물었다.
" 간달프, 요정들은 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나요?"
빌보의 순진한 질문에 간달프가 헛웃음을 치며 짧게 대답했다.
" 난쟁이들이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들의 파티에 요정을 초대할리가."
모두가 한데 얽혀 한바탕 흥겨운 춤을 추고있는 중앙홀에 도달하자, 빌보의 조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가 춤추는 무리에 합류해버렸다. 그 무리중에는 킬리와 필리도 있었고, 빌보는 그들을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킬리와 필리가 이 곳에 있다는 건, 분명 그의 삼촌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빌보는 어쩐지 그를 마주하기 껄끄러운 기분이 들어, 몸을 낮추고 인파들 사이에 숨어 계단 옆에 구석진 장소로 이동했다. 왜 자신이 소린을 피해야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어떤 난쟁이인지 판단하기가 혼란스러운 지금은 그와 마주치는 일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 아무래도 여기보다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있는 게 좋겠어."
빌보가 혼잣말을 읊조리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빌보의 머리위에서 낯익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하고 있는거지? 미스터 배긴스."
이런. 빌보는 난색을 표하며 자신의 곁에 서있는 난쟁이를 바라보았지.
"안녕하세요 미스터 소린."
" .. "
" ..멋진 파티네요. 음식도 아주 훌륭하고요. 드워프들이 이렇게 멋진 파티를 만들 수 있는 종족인 걸 처음 알았네요. "
빌보가 자신을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소린이 알리가 없는데도, 어쩐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빌보가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빌보의 눈앞에 남자답고 약간은 거친 드워프의 손이 내밀어졌다. 빌보가 그 의미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소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다음 춤은 나와 추지 않겠나. 빌보 배긴스."
세상에. 빌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눈앞의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빌보는 어찌나 놀랬던지, 머리로 자세히 생각할 틈도 없이 먼저 대답하고 말았다.
" 오 맙소사. 좋아요."
그리고 춤이 시작되자, 빌보는 아무런 생각없이 춤신청을 수락한 자신의 입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린 오큰실드가 누군가와 춤을 춘다는 사실은, 그 장소에 있는 모든 드워프들의 놀라움을 샀고, 빌보는 단 한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서 춤을 춰본적이 없었다. 긴장한 탓인지 빌보가 잠시 박자를 놓쳐 휘청거렸고, 소린은 그런 빌보의 손을 잡아 재빠르게 그가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 난 당신을 판단할 수가 없군요 소린 오큰실드."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빌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 무슨 뜻이지?"
" 방금만 해도 그래요. 넘어질 뻔한 나를 도와준 걸 보면 당신은 좋은 난쟁이인것 같지만, 내 실수를 비웃었으니 나쁜 난쟁이인 것도 같아요."
빌보의 말에 소린은 재밌다는 듯 빌보의 눈을 마주보았다.
" 그리고 또?"
" 당신의 저택에서도 그래요. 내가 조랑말에 오를 수 있게 호의를 베풀어줬지만, 내게 작별인사를 건네지 않았죠. 게다가 당신은 나를 처음 봤을때 아주 무례하게 굴기도 했고요. "
빌보가 춤을 추며 소린을 향해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음에도 소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그냥 닥치고 춤이나 추는게 좋겠군요."
시무룩해진 빌보가 조용히 춤에 집중하려 하자, 이번엔 소린이 입을 열었다.
" 요정과의 친분이 있었나? "
" 요정이요? 아뇨. 전 그저.. 그 날 그들의 티타임에 잠시 초대되었을 뿐이예요. 그들은 매우 친절했... "
빌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친절? 가식이겠지. 요정들은 앞뒤가 다른 족속들이니까."
"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시는군요."
" 잘 모른다고?"
아직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소린은 춤을 멈추고 빌보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평소보다 더욱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샤이어에서 틀어박혀 세상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호빗보다는 내가 요정에 대해 훨씬 잘 알지."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게 된 소린의 눈을 바라보자, 그 깊은 파란 눈동자에 매료된 듯이 빌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빌보는 곧 또다시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발끈하며 소린을 요정에 대한 반박을 더 하려 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빌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음악이 끝났다. 함께 춤을 추던 이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상대방의 춤솜씨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는 가운데, 소린은 빌보를 향해 형식적으로 고개만 까딱 끄덕여보이고는 휑하니 돌아서 자리를 떠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파티장 안에 굉음이 들리고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 용이다!!! "
빌보와 소린은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고, 그들은 동시에 거대한 붉은 형상이 파티장 천장을 빠른 속도로 휩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파티장에 새된 비명소리가 가득찼고, 그 붉은 불꽃이 빌보의 머리위를 지나는 순간, 소린은 재빠르게 몸을 던져 빌보를 감싸안았다. 뜻 밖에도, 콰광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용의 형상은 아름다운 불꽃이 되어 터졌고, 비명소리는 이내 탄성이 되었다. 빌보는 이 모든 것이 근처에 숨어서 키득대는 자신의 조카들의 소행임을 깨닫고 그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메리!! 피핀!! 내가 간달프의 폭죽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 "
그리고는 아직도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소린을 향해 몸을 돌리고 그의 안색을 살폈다.
" 죄송해요, 제 조카들이 장난을 친 모양이예요. "
소린은 어딘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다른 것도 아니고 용이라니!"
" 소린..? "
소린은 화가 난 와중에도 빌보가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빠르게 훑어보고는, 벌떡 일어나 쿵쾅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조카들의 장난이 짖궂기는 했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격하게 화를 내는 소린을 빌보가 이해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빌보는 홀로 남아 소린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멀뚱하게 바라볼 뿐이었고, 그렇게 파티는 밤새 지속되었지만, 그 파티장에서 소린의 모습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호빗(Hobbit) > 오만과편견AU(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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