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Hobbit)/단편

[소린빌보] 연서(戀書)



연서 戀書

Love letter





  

 한 겨울의 바람이 매섭던 2월의 어느 날, 프로도 배긴스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자신이 다니는 잡지사에 연차를 내고 400마일이나 떨어진 먼 친척의 집을 방문해야만 했다.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러 나서며, 프로도는 밤색 목도리를 코끝까지 올려 덮었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았으나, 바람이 무척이나 차가운 그런 날이었다. 프로도는 오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삼촌의 유산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변호사로부터 전해듣기로는, 삼촌의 장례식에 찾아온 조문객이라고는 이웃의 주민 몇 명이 전부였다고 했다.  프로도가 택시에서 내려 삼촌의 집까지 걸어가던 중, 그 몇 안 되는 조문객 중 하나였던 이웃의 부부가 프로도를 향해 아는 체를 했다.


"혹시 배긴스씨 댁을 찾아온 겁니까?"


"아, 네. 프로도 배긴스라고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게요, 미스터 배긴스씨."


"고맙습니다. 저,  빌보 삼..촌이랑은 가까운 사이셨나요? "



 프로도의 질문에 이웃 주민 아주머니의 표정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프로도의 삼촌에 대한 주민들의 평을 전했다.


" 따지자면 우리가 가장 가까운 이웃 주민인 건 사실이지만, 배긴스씨는  사실 워낙 특이하셔서…. 저와 남편이 인사를 건네도 단 한번도 받아준 적이 없었죠. 워낙에 사람들과 말을 섞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우리는 그가 귀머거리나 벙어리일거라고 생각했다니까요. 게다가 맨날 2층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뭔가를 쓰면서 창문만 쳐다보는데, 혹시 작가나 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우? "


" 글쎄요. 제가 알기에는 작가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삼촌에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도는 그들에게 간단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고개를 들어 그의 삼촌이 죽기 전까지 지냈던 오래되고 작은 이층집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집 앞에 낡은 포스트 박스가 마치 이 집의 세월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프로도는 자신이 어릴 때, 몇 번인가 이 집을 방문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가 기억하는 그의 삼촌은 영 이상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인사를 받아주기는커녕 그들이 머무르는 내내, 2층 자신의 방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오는 법이 없었다. 언제인가는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총을 빼앗고 돌려주지 않아서 프로도가 온 집이 떠나가라 울며불며 난리를 쳤던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빌보 삼촌에게 조기 치매라도 왔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프로도의 어머니는 자신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를 죽기 전까지 살뜰히 보살폈다. 마치 뭔가 큰 빚이라도 진 사람처럼 자신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괴팍한 자신의 오빠를 언제나 걱정했다. 


 그런 그녀의 그런 정성을 삼촌이 알아줘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그에게 남은 일가친척이라고는 프로도 하나뿐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유서에 자신의 모든 유산을 프로도에게 상속하겠다고 적었고, 그것이 바로 프로도가 이 먼 곳까지 연차를 내며 방문한 목적이었다.  삼류 잡지사에서 시답잖은 칼럼이나 쓰며 런던의 살인적인 집세에 시달리던 프로도에게, 그의 유산은 복권당첨과도 같았다.  딱히 삼촌과 쌓인 좋은 추억이 없어서일까, 프로도는 빌보의 죽음에 대해 조금의 안타까운 마음도 품지 않았다. 그저 프로도에게 자신의 삼촌 빌보 배긴스의 죽음은, 뜻밖의 횡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변호사와 상속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프로도는 빌보의 방이 있던 2층을 살펴보았다. 웬만한 물건들은 다 버리던지 팔기로 했지만, 혹시 챙겨야 할 물건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프로도의 어머니의 사진이라던가, 귀중품 같은 것들? 신경을 거스르는 듯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낡은 2층 계단을 오르자, 빌보가 일평생을 틀어박혀 있던 그의 방문이 보였다. 프로도의 예상과는 달리 빌보의 방은 생각보다 단출하고 깔끔했다. 이웃 주민의 말대로 빌보는 생전에 뭔가를 쓰기를 좋아했는지, 그의 책상에 만년필과 편지지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자신도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프로도는 그의 책상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책상 그 아래 서랍을 열자, 수두룩한 편지 뭉치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쌓여있었다.


 '의외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긴 했던 모양이네.'


 프로도는 이 편지들만큼은 자신이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편지에 다른 이들의 사생활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니. 프로도는 아예 서랍을 통째로 잡아 빼서 책상에 얹어 두고, 봉투를 하나씩 뒤집어보았다. 편지들을 수신인 별로 분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편지봉투 수신인란에는 전부 같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 소린 오큰실드? 특이한 성이군."


 흔치 않은 이름과 성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이름을 중얼거리며 편지를 정리하던 프로도의 눈에 문득 이상한 사실이 하나 발견되었다. 모든 편지봉투에 동일하게 빌보 이름이 보내는 사람 쪽에 적혀있고, 소린 오큰실드의 이름은 받는 사람 쪽에 적혀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이 모든 편지들이 부치지 못한 편지였다는 의미였다. 프로도는 혹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아래에 깔린 다른 편지봉투들도 훑어보았으나 전부 마찬가지였다. 빌보가 받은 편지라고는 단 한 통도 없이, 보내지 못한 편지들만 그득했던 것이다. 순간, 프로도의 마음속에 이제껏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자신의 삼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프로도는 수많은 편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빛이 바래 보이는 편지 하나를 집어 들어 뜯어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소린에게.

 지난밤 당신이 보내준 편지는 잘 전달되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제 마음이 어땠는지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하겠죠. 저는 편지를 받자마자 기뻐서 밤새 뒤척이느라 한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당신을 향한 연모의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죠. 당신이 저와 다르게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제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지금 당장에라도 당신을 만나서 제 뜻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안타깝게도 저의 어린 여동생이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제가 그녀를 돌봐줘야만 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당신과 같다는 것을 꼭 전해드리고 싶네요. 동생의 병이 낫기만 하면 바로 당신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빌보 배긴스




 소린,  지난주 당신을 방문하지 못해서 얼마나 상심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에게 답장을 써놓고도 그것을 보낼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을 양해해주세요. 여동생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서 의사를 부르러 정신없이 시내를 뛰어다녀야만 했거든요.  하마터면 저는 그대로 여동생을 영영 잃을뻔했습니다만, 다행히도 지금은 큰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지요. 혹여 당신이 저의 침묵이 거절의 뜻이라고 생각할까 봐, 다시 한 번 편지를 보냅니다. 의사를 찾아 시내를 찾아다니면서 당신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만, 그런 행운은 제가 찾아와주지 않더군요. 혹시 이 편지를 받게 된다면 시간이 언제가 되었든 저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상관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빌보 배긴스.



 어딘지 정갈하지 못한 필체로 쓰인 두 번째 편지를 다 읽고, 프로도는 두 번째 편지의 봉투를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희미하게 반송도장이 찍혀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번째 편지도 주인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빌보에게 되돌아온 모양이었다.  프로도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혀끝을 찼다. 아마도 빌보 배긴스는 젊은 시절 한 용기 있는 여성과 열애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 시대에 보기 드물게 자신의 마음은 먼저 편지로 표현하는 당찬 여자였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빌보는 그녀에게 제때 답장을 하지 못했고,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마음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이야기였다. 단지 자신의 삼촌이 실제로 그 이후로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50년 동안이나 품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소린, 저는 당신이 무사하기를 비는 것으로 어제 하루를 전부 써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어제도, 그저께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라디오에서 사망자 명단이 뜰 때마다 당신의 이름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더군요. 소린.. 아, 소린. 제발 당신은 무사히 돌아와야만 해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당신은 짐작이나 하실까요. 당신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매일매일 송곳처럼 변해 저의 심장을 찔러옵니다. 당신이 제 마음을 오해한 채로 떠난 게 아닐까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답니다. 저는 당신이 부디 무사히 돌아와 저를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매일 당신을 만나, 뒤늦은 대답을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빌보 배긴스.





나의 친구 소린 오큰실드.

오늘은 당신을 처음 만났던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거리와 상가 곳곳마다 당신과 함께 즐거운 우정을 나누었던 기억들이 스며들어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저의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 만들었어요. 한동안 당신의 걱정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제 어린 여동생이 저를 호되게 나무라더군요. 그녀는 제가 건강하게 당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며, 당신이 없는 동안 이 거리의 풍경들을 제가 기억해서 당신이 돌아오면 전해줘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만큼이나 당신도 이 거리를 사랑해왔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법 씩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돌아오는 날까지,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하는 많은 풍경을 보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빌보 배긴스.




친애하는 소린.

저는 당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싫어지셨다고 해도 상관이 없고, 돌아오자마자 다른 이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도 저는 웃으며 기꺼이 당신을 축복해줄 수도 있어요. 당신이 지난날 제게 마음을 고백했던 일을 후회하신다면 저는 그 일을 혼자 무덤까지 비밀로 간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돌아와요. 이제는 제발 돌아와요.

당신을 기다리며, 빌보 배긴스.




소린,

소린. 소린. 소린. 소린. 소린.

빌보 배긴스.





  어떤 편지를 보아도 하나같이 애절한 연정이 담겨있는 연애편지였다. 괴팍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삼촌에게 이런 로맨틱한 연애담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쩌면 이 사연을 다음 호 특집으로 다룰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프로도는 빌보의 연애상대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전쟁터에 나갔다는 편지의 내용을 미루어보아 아마도 그녀는 빌보에게 실연당한 충격으로 간호병으로 자원입대를 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아니지. 어쩌면 그녀가 아니라 그 일지도 모른다. 그 쪽이 좀 더 매끄러웠다. 이름도 여자보다는 남자의 이름에 가까웠다. 그래, 삼촌이 사랑했던 이는 남자일 확률이 더 높았다. 

 어쨌든 프로도는 빌보와 엇갈린 로맨스를 펼친 그 소린 오큰실드라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가 빌보의 또래였다면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빌보의 편지들에는 하나같이 주소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건 꽤 이상한 일이었다. 50년간이나 꾸준히 편지를 써놓고도 보내지 못한 데에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테지. 그는 빌보의 편지에 적혀있던 대로, 전쟁에서 돌아와 다른 이와 결혼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빌보가 자신의 마음을 평생 묻어두고, 이렇게 보내지 못할 편지만 썼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프로도는 자신의 삼촌이 참 불쌍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그는 얼마나 서툰 사람이었던 것일까. 이렇게 50년이나 편지를 쓸 바에야, 차라리 상대방이 남자든 유부녀든 간에 한번 부딪혀보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프로도는 나머지 편지들은 더 이상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상자에 그것들을 담았다. 대충 상자를 닫고, 빌보의 책상에 그것을 올려두었다. 사람을 시켜 다른 잡동사니들과 함께 불태워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프로도가 그 방문을 나가기 전에, 불현듯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일 그 상대가 아직 살아있다면, 프로도가 빌보의 편지들을 그에게 대신 전해주면 어떨까? 빌보는 이미 죽었고,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그, 혹은 그녀도 아마 꽤나 나이가 들었겠지. 그렇다면 이제 와서 빌보의 편지를 전해주는 것이 그녀, 혹은 그의 가정에 불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대로 저 편지들을 그냥 불태우기에는, 빌보의 50년간의 마음이 가엾기도 했다. 프로도는 닫았던 상자를 다시 열어, 빌보의 첫 번째 편지와 반송되었던 두 번째 편지를 찾아 주소를 찾아보았다.  프로도는 곧 두 번째 편지와 첫 번째 편지의 주소가 약간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주소를 잘못 써서 반송된 거였군."



 프로도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두 번째 편지를 보낼 때 조금만 덜 조급하게 주소를 썼다면, 엇갈릴 일도 없었을 텐데. 빌보 배긴스는 지독하게도 운이 없는 남자였다. 프로도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을 실행했다. 재빠르게 첫 번째 편지의 주소를 옮겨 타이핑하고, 상자 속의 편지들을 자신의 가방에 옮겨 담았다. 아직도 그 주소에 소린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을 가능성은 적었지만, 운이 좋다면 그들이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지금 어디에 사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프로도는 망설임 없이 빌보의 집을 나와, 근처를 지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편지에 적혀있던 주소로 향했다. 

 택시는 한 시간쯤 달려 어느 저택에 도착했다. 프로도는 그 집이 고속도로나, 주차장 따위로 변해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선 안심했다. 프로도가 경쾌하게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험상궂게 생긴 한 남자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 누구요? "

" 실례합니다. 혹시  이 집에 소린 오큰실드라는 분이 살고 있나요? 아마도 나이가 70대 후반 정도 될 것 같은데. "

" 그런 사람은 없소. "


남자가 퉁명스럽게 답하고 문을 닫으려 하자, 프로도가 그를 막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 혹시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셨나요? 전에 살던 가족을 찾고 싶은데요. 실례라는 건 알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요."


프로도의 간곡한 부탁에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집 안에 있던 자신의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부인에게 이사를 오기 전에 살고 있던 가족에 관해 물었다. 그의 아내가 가까스로 전에 살고 있던 가족 중에 남자 노인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 저희는 20년쯤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왔어요. 아마도 이 집의 주인아저씨가 살아있다면, 지금쯤 70대가 되었겠네요. 그 할아버지는 자신의 부인과, 여동생 부부, 그리고 그녀의 두 아들과 함께 살았어요. 어휴, 그 애들이 얼마나 정신없던지 집을 보러 왔을 때 제정신을 쏙 빼놓았죠."


 남자는 자신의 아내와 프로도의 대화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이 불쾌했다. 그가 자신의 아내를 팔꿈치로 치며, 빨리 그들이 이사 간 주소나 알려주라고 닦달했다. 그녀는 아쉬운 듯이 프로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집 애들이 꽤 먼 곳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했어요. 아마 당신도 이름을 알 거예요. 엄청나게 유명한 명문고등학교니까. 그래서 학교 근처로 다 같이 집을 옮기기로 했다고 했는데, 정확한 주소는 저도 모르겠네요. 이 정도면 도움이 되었나요? "


" 물론이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도가 그녀를 향해 웃으며 감사인사를 하자, 그녀의 남편이 퉁명스럽게 그녀를 집안으로 끌어당기고 문을 닫았다. 프로도는 자신이 원하는 충분한 정보를 얻었음에 만족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 도시가 이곳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로도는 내일 회사로 복귀해야만 했다. 비록 방금 유산을 상속받은 찰나였지만,  그 유산이 프로도가 실직자로 살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금액은 아니었기에, 프로도는 일단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프로도는 빌보의 연애상대를 찾아가는 일은 일단 미루어두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프로도가 런던으로 돌아온 뒤, 몇 주 동안이나 프로도는 빌보의 편지에 대한 것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의 편지가 담긴 가방은 아예 현관 옆 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그가 가방에 걸려 거하게 넘어지고 나서야, 프로도는 비로소 삼촌의 편지에 대한 것을 기억해냈다. 프로도는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온 집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편지를 낭독하며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 친애하는 소린. 저는 이제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휴, 이런 미련스러운 사람 같으니. 그냥 다른 남자든 여자든 만나서 결혼하면 되잖아?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평생 못 잊다니.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 저는 특별하게 뭔가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부도 명예도.

 빌보 삼촌, 당신은 정말 머저리 같아요. 과연 섹스는…. 해보기는 했을지. 동정으로 죽었다면 삼촌은 배긴스 가문의 수치라고요.

 지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당신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는 것뿐입니다. 신이 저의 삶을 동정한다면 이 소원만큼은 허락해주시겠죠. 제겐 그 외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는 것 말고는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  "


 술김에 감정이 복받쳐왔기 때문일까? 장난스럽게 편지를 읽어내리던 프로도의 눈가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 빌보. 당신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에요. 안 되겠군요. 제가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줘야겠어요."



 프로도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그의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여전히 소리 내 엉엉 울면서 프로도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오큰실드 가족의 아이들이 다닌다는 학교의 주소를 검색했다. 그리고는 급기야 철도사이트에 접속해서 기차를 예약하기 시작했다. 결제까지 모두 마치고 나자 프로도의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그렇게 프로도는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제 자신이 했던 미친 짓에 대해 욕설을 내뱉었다.



" 술을 끊든지 해야지 정말."


 프로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잠시 갈등에 빠졌다. 그나마 오늘이 주말이라 출근을 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어쨌든 기차표는 이미 예약한 상태였고, 빌보의 편지를 언제까지나 갖고 있는 것도 프로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프로도는 냉장고를 열어 쓰린 속에 오렌지 주스를 대강 채워 넣고는 옷을 챙겨입고 역으로 향했다. 기차는 2시간 정도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고, 프로도는 학교 졸업생 명부를 뒤져 어렵지 않게 오큰실드라는 성을 가진 두 명의 남학생을 찾을 수 있었다. 학교 측에서 알려준 그들의 집 주소를 찾아가 벨을 누르자, 그들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이 프로도를 맞이했다.


" 실례합니다. 혹시 이곳이 오큰실드씨의 집인가요? "


" 물론이죠. 물론 저는 잠시 오큰실드가 아니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다시 오큰실드로 돌아왔죠. 저의 아이들도 제 성을 따르고 있고요. "



 그녀는 제법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녀는 프로도의 손에 들린 메모지에 새겨진 학교의 로고를 보자마자, 그가 자신의 아이들의 학교에서 왔음을 알아냈다. 


" 아.. 그거 다행이네요. 아뇨, 이혼을 하셨다는 게 다행이라는 게 아니라…. 자녀분들의 성이 오큰실드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곳을 찾아올 수 없었을 것 같아서. 그 점이 다행이라는 거예요. "


"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미스터..? "


" 아, 저는 프로도 배긴스라고 합니다. 빌보 배긴스 씨의 유품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한 달 반 전에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 이런…. 배긴스씨가 돌아가셨군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저는 그의 소식을 오랫동안 듣지 못해서…. 부디 그가 좋은 곳으로 떠났기를 바래요. 그런데 그가 혹시 끝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냈나요? 조카인 당신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보니. "


" 네, 삼촌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았어요."



프로도의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안타깝게 변했다. 프로도는 자신의 가방에서 편지가 담긴 종이가방을 꺼내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 소린 오큰실드씨에게 삼촌의 편지를 전해주려고 왔어요. 이건 이를테면, 그의 유품이죠. 혹시 그분께서 아직 이곳에서 살고 계신가요?"


" 당신도 삼촌과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던 모양이네요."



 프로도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프로도의 얼굴만 보고도 그 사실을 알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프로도를 향해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 제 이름은 디스. 소린 오큰실드의 여동생이죠. 안타깝게도 이 편지는 전해줄 수 없겠네요. 그는 이미 50년쯤 전에 전쟁터에서 죽었거든요. 그의 시체도 찾지 못해서, 우리는 그의 무덤도 만들어 줄 수 없었죠. "


" 그럼 삼촌은.. "


" 빌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제가 그를 찾아가 말해줬죠. 당신이 그걸 모르고 있길래, 삼촌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 거예요."



 디스의 대답을 듣자 프로도가 힘없이 종이가방을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소린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가 50년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빌보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프로도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었다. 디스는 프로도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 빌보가 계속 오빠를 그리워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나 많은 편지를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니. 가엾게도. 제가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저는 그에게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권했어요. 여자와 결혼을 해도 좋고, 다른 남자를 사랑해도 좋고. 뭐든 상관없으니 그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행복해지기를 바랬죠. 오빠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네요. "



 이곳에 방문한 목적을 잃은 프로도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그녀를 향해 시간을 뺏어서 죄송하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갑자기 디스가 뭔가 떠올린 듯, 프로도를 불러세웠다. 그녀는 프로도를 현관에서 기다리게 한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아주 오래된 편지 한 통이었다.



" 예전에 빌보가 제게 돌려줬던 오빠의 편지예요.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그를 잊을 자신이 없다고 해서 제가 보관해두고 있었죠.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당신이 처리하는 편이 좋겠네요."


 프로도는 디스가 건네준 소린의 편지를 받아들었다. 봉투에 쓰인 필체부터가 빌보의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프로도는 디스를 향해 다시 한 번 작별인사를 건네고 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침 비어있는 버스 뒷자리에 앉자마자, 프로도는 소린의 편지를 조심히 펼쳐 읽어내렸다.




친애하는 빌보 배긴스.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기까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소. 어쩌면 이 편지가 당신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도 모르겠군. 그대는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친구였소. 나는 그대와 이야기할 때마다 그대의 재치있고 사려 깊은 행동들에 매번 감명을 받고는 했다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나의 마음이 우정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려 하오. 그대가 나를 보고 햇살 같은 웃음을 터뜨린 날이면 밤새 그대의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대를 못 보는 날이 길어지면 나의 마음은 구름이 낀 하늘처럼 어두워지고는 했다오. 이런 나의 마음을 밝히는 데는 엄청난 각오가 필요했소. 어쩌면 난 이 편지로 세간의 모든 평판을 잃을지도 모르지. 그대가 나의 마음을 경멸하여 사람들에게 나를 비난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대를 원망하지 않으리다. 그것은 전부 그대에게 그런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 나의 탓일 테니. 만일 그대가 나의 마음을 거절한다면 나는 군대에 자원할 생각이오. 그대의 눈에서 멀어져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배려일테니. 하지만, 만약. 아주 조금이라도 그대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부디 나를 찾아와주기를 바라오. 혹 그것이 부끄럽다면 편지라도 상관없소. 그대가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여준다면, 나는 이 지독한 열병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겠소.

소린 오큰실드



 편지를 읽으며 프로도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사연이 너무나도 기구했다. 버스는 어느덧 역에 도착했고, 프로도는 힘없이 런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다시 창구로 가서, 기차의 목적지를 빌보의 집이 있는 역으로 변경했다. 왠지 편지들을 빌보의 집에 다시 돌려놔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차에 앉아있는 내내 프로도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총을 보며 사색이 되던 삼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매번 프로도의 엄마를 불러 아이를 군인으로 만들지 말라며 훈계를 하곤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소린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빌보에게 평생 남을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프로도가 씁쓸한 미소를 참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프로도는 기차 안에서 빌보의 편지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빌보는 소린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도 그를 향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편지를 썼다. 어떤 날은 그와 있었던 추억을 회상했고, 어떤 날은 그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자신의 일상에 대해 적었고, 몇 번인가는 프로도에 대한 이야기도 적었다. 어떤 편지에는 그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있었고, 어떤 편지에는 운명에 대한 지독한 원망이 담겨있었다. 

 소린은 빌보가 자신의 마음을 거절했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전쟁터에서 죽어갔다. 빌보는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그는 평생을 뼈저린 후회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소린의 편지를 받은 그 날, 자신의 여동생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두 번째 편지를 쓸 때 자신이 주소를 틀리지 않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자신이 처음부터 일찍 용기를 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었더라면. 빌보가 느꼈을 뼈저린 후회와 고통이 글자 하나하나마다 묻어있었다. 그렇게 50년이 넘도록 혼자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자신의 방에서 소린을 향해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평생 써왔을 빌보를 떠올리자 프로도의 마음이 서러움에 복받쳐 올랐다. 프로도는 그저 안타까웠다 소린의 짧은 인생이, 빌보의 회한으로 가득한 긴 세월이.  눈물이 편지 위로 뚝뚝 떨어지고, 급기야 프로도는 아이처럼 기차 안에서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몇몇 사람이 그런 프로도를 수군거리며 쳐다봤지만, 프로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프로도는 그저 두 사람의 사연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당사자라도 된 것처럼 한참이나 눈물을 쏟아냈다.


 빌보의 집에 도착했을 때, 프로도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프로도는 2층 빌보의 방 책상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평생 바라보던 풍경을 프로도 역시 눈에 담고 싶었다. 그 시선 끝에는 언덕 위에 심어진 커다란 참나무가 있었다. 멍하니 빌보의 의자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던 프로도의 머릿속에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한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참나무, 오크트리!


 오마이갓. 불쌍한 빌보삼촌, 평생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죽은 연인의 이름을 떠올리는 나무를 지켜봤다니.  프로도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빌보의 편지들을 들고 그 언덕 위를 달려올라갔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또다시 눈시울이 시큰해져 몇 번인가 눈을 깜박였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거대한 참나무였다. 한참을 입을 떡 벌리고 나무를 지켜보던 프로도가, 갑자기 옷매무새를 다듬고 나무를 향해 정중한 인사를 건네며 엉뚱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흠흠, 안녕하세요. 소린 오큰실드씨. 저는 일일 우편배달부 프로도 배긴스라고 합니다. 오늘 당신께 빌보 배긴스 씨의 편지를 전해드릴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


" 좋아요. 침묵은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자 그러면 첫 번째 편지입니다. 친애하는 소린에게.. "



 프로도는 그 나무 아래에서 빌보가 썼던 편지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소리 내 읽었다. 마치 그 참나무가 소린이라도 되는 듯이, 공손한 태도로, 빌보가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소린이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빌보의 마음들을. 편지를 읽는 도중 몇 번인가 눈물이 나올 뻔 하기는 했지만, 프로도는 침착하게 울지 않고 또박또박 빌보의 편지를 다정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편지를 읽었던 탓에 프로도의 목소리가 조금씩 쉬어가고 있었지만 프로도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의 손에는 단 한 통의 편지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도는 나무 밑의 땅을 파내어 그들의 편지를 함께 묻기로 했다. 물론 빌보의 이야기를 잡지에 실으려던 자신의 계획도 깔끔하게 접었다. 프로도는 이제서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자신의 삼촌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남은 편지를 조용히 소리 내 읽었다. 부디 그들이 다시 만났기를 바라며.




소린, 아마도 이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군요.

저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당신에게 편지를 써왔습니다만, 이제는 더이상 당신을 향한 편지를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냐면 드디어 당신을 만나러 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죠. 당신을 직접 만난다면 편지가 아닌, 저의 목소리로 직접 모든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겠군요. 혹시 제 모습이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아주 달라져 있더라도 부디 놀라지 않으시기를 바래요. 당신과 함께하지 못한 저의 인생은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비참했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세상의 많은 일들은 제가 대신 보았으니까요. 당신을 만나 이 모든 것들을 전해줄 날들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소린. 제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이번에는 당신과 엇갈리지 않도록, 당신이 기다리는 그 장소로 틀리지 않고 찾아갈게요. 이번에야말로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직접 제 입으로 말할게요. 조금만…. 아주 조금만 떠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곧 당신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빌보 배긴스.








발렌타인데이 비슷한 시기에 올리지만, 발렌타인과는 별로 상관없는 글이 나왔네요.

별로 상관없는 얘기지만 디스의 집에 함께 산다던 70대 노인은 당연히 소린이 아니라 프레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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