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필리] Finding Kili
Finding Kili
킬리필리/단편
킬리가 가출했다.
킬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필리였다. 킬리는 매일 아침 필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자신의 형제가 자고있는 침대에 온몸을 던져 부딪히는 과격한 모닝콜을 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찾아오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필리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러나 필리는 그때까지도 킬리가 가출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킬리의 가출을 알아챈 것은 빌보였다. 늦은 기상 후에 부랴부랴 몸단장을 하고 있던 필리를 발견한 에레보르의 호빗은, 너무나도 당연히 필리의 옆에 있어야 할 동생의 부재에 관해 물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필리. 근데 킬리는요?"
"방에서 아직 자고 있는 거 아냐?"
빌보는 필리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이 방금 걸어왔던 방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방금 킬리의 방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텅 비어있던걸요. 당신들 삼촌이, 둘을 함께 데려오라고 명령했는데.."
"소린 삼촌이? 무슨 일로?"
"글쎄요. 제 생각엔 아무래도, 당신의 결혼 문제일 것 같은데."
필리는 그제야 모든 사건에 대한 조각이 머릿속에서 짜 맞추어짐을 깨달았다. 곤란한 듯이 수염을 매만지며, 필리는 서둘러 에레보르의 산밑 왕이자 자신의 삼촌인 소린 오큰실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왕좌에 위엄있게 앉아있는 외로운 산의 드워프왕 소린은 홀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필리를 보며 골치가 아픈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킬리녀석, 기어코 가출한 모양이군."
"네?"
"무슨 소리예요 그게?"
필리와 빌보가 거의 동시에 소린을 향해 되물었다. 그러자 소린은 한숨을 내쉬며 지난밤 킬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말다툼에 대해 털어놓았다.
에레보르는 이제 제법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스로르왕이 통치하던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용의 흔적은 전부 사라졌으며, 성 근처에는 많은 난쟁이가 자리를 잡고 새로운 터전을 일구어가고 있었다. 소린은 이제 슬슬 자신의 후계자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소린의 나이는 이미 적지 않았으며, 그는 이제 와서 새로운 반려자를 맞이할 생각이 없었다. 또한, 그에게는 이미 아이를 만들 수 없는 신부가 하나 있었기에. 어쨌든, 소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후계자인 필리의 혼사를 슬슬 추진할 때라고 생각했다. 필리 역시 별다른 이견 없이 삼촌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킬리가 어젯밤, 소린을 찾아와 화를 내며 따져 물었던 것이다.
"삼촌, 필리가 결혼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필리도 이제는 신부를 맞이할 나이가 되었지."
"말도 안돼!"
킬리가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자, 소린은 자신의 조카를 귀엽게 바라보며 말했다.
"필리가 너보다 먼저 결혼하는 게 분한 건 이해하겠지만, 어쨌든 필리가 형이야. 그의 결혼이 먼저다."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삼촌!"
"그럼, 뭐가 중요하지? 형을 뺏기는 게 서운하기라도 한 거냐?"
소린의 말에 킬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얼굴은 심통 난 어린애처럼 변해서, 눈가엔 눈물마저 그렁그렁할 정도로 분해하고 있는 킬리를 보니, 소린은 당장에라도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짐짓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철없는 조카를 엄한 말로 달랬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순리라는 게 있는 법이란다. 후계자로서 마땅한 절차를 치러야 하지."
"어쨌든 난 필리가 결혼하는 게 싫어요!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삼촌이 직접 만들면 되잖아요!"
그리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킬리는 에레보르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가만히 소린의 이야기를 듣던 빌보와 필리는 한꺼번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보는 이게 다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남자 호빗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진 촌극이라고 자책했다. 소린이 후계자를 직접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빌보에게 있었으니. 빌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린과 필리를 향해 말했다.
"제가 킬리를 찾아와야겠어요. 아무래도 이 모든 소동은 저 때문인 것 같으니.."
"그럴필요 없네, 빌보. 때 되면 돌아오겠지.
단호한 소린의 말에 빌보가 안절부절못하며 곤란한 표정으로 소린을 바라보았다. 필리와 킬리 중에 굳이 소린을 닮은 쪽을 고르라면, 사람들은 보통 필리를 꼽고는 했다. 그들의 책임감이나, 신중한 성격이 그러한 판단에 큰 영향을 끼쳤겠지. 하지만 빌보는 가끔은 킬리와 소린이 놀랄 만큼 닮은 부분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건 바로 그들의 고집이었다. 한번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절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킬리와 소린 사이에서 그나마 완충재 역할을 하는 건 필리였다. 소린이 여느 때처럼 요지부동 고집을 피우자, 빌보는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아 보이는 필리를 향해 도움을 청하듯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믿었던 필리마저 다정한 표정으로 웃으며 빌보와 소린을 향해 말했다.
"삼촌 말이 맞아. 때 되면 돌아오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마, 빌보."
다정한 듯 단호한 필리의 말을 듣자 빌보는 물론이고, 소린 역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제 형제 일이라면 삼촌의 명령까지 거스를 정도로 끔찍하게 킬리를 챙기던 필리가, 이렇게나 덤덤한 반응을 보이다니. 소린과 빌보가 서로 당황한 듯이 눈짓을 주고받거나 말거나, 필리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런 숨바꼭질이라면 능숙하지.'
필리는 자신과 필리가 어린 시절부터 즐겼던 숨바꼭질을 떠올렸다. 딱히 이제부터 놀이를 시작한다고 선언하지 않아도, 한 사람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한 사람이 상대를 찾는 것이 규칙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숨바꼭질에서 이기는 것은 필리였다. 킬리는 어째서 필리는 그렇게 자기를 쉽게 찾아내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고는 했지만 필리에게는 너무도 간단한 일이었다.
'킬리는 언제나 내게서 멀리 도망치지 못했으니까.."
매번 숨바꼭질에서 자신이 패배하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면서도, 킬리는 항상 필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숨고는 했다. 필리의 침대 밑이나, 옆방 테이블, 가까운 곳의 나무 위. 그래야만 킬리가 필리를 지켜볼 수 있었으니. 그런 킬리의 패턴을 매우 잘 알고 있는 필리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엉뚱한 곳을 뒤지다가 곧 킬리를 찾아내 승리를 따내고는 했다. 반면 필리는 도저히 킬리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깊고 먼 곳으로 달아났다. 킬리는 필리가 스스로 제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필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숨바꼭질은 100전 100승 필리의 승리로 끝나고는 했다. 그렇기에 필리는 이번에도 킬리를 여유롭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킬리, 이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필리는 옷장을 하나씩 열어젖히며 여전히 느긋한 목소리로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삼촌의 말처럼 우리에겐 후계자가 필요해."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너와 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킬리."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
그러나 필리가 자신의 방은 물론, 옆방과 복도, 그리고 다른 층의 방까지 모조리 뒤져도 킬리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필리는 조금 곤란한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중얼거렸다.
"이번엔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군."
필리는 독하게 숨어버린 자신의 동생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이나 에레보르 성안을 쥐잡듯이 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필리의 얼굴에서 여유가 조금씩 사라졌다. 빌보 역시 그런 필리를 도와 바지런히 에레보르를 돌아다녔으며, 보푸르와 오리도 곧 킬리를 찾는 모임에 합류했다. 킬리가 꼭꼭 숨어버렸다는 소문이 온 드워프들 사이에 퍼지자, 난쟁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우르르 킬리를 찾았다. 개중에는 진짜 내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킬리를 먼저 찾는 이에게 판돈을 몰아주는 걸로. 그들은 에레보르를 넘어서서 데일과 호수 마을까지 흩어져 킬리를 찾기 시작했다.
킬리가 사라진 지 몇주일이 지났다. 필리의 표정에선 이제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초조해진 건 소린도 마찬가지였다. 호기롭게 킬리를 내버려두라고 말할 때는 언제고, 소린은 자꾸만 난쟁이들이 가져오는 필리에 대한 소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쌍으로 침울한 표정을 한 두린왕가의 두 난쟁이 사이에서 곤란한 건 빌보였다. 빌보는 가만히 소린의 손을 마주 잡고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로 그를 설득했다.
"소린, 그냥 필리의 결혼을 포기하는 건 어때요? 그러면 킬리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러나 소린의 고집은 단호했다. 그럴 만도 한 게, 필리나 킬리가 후계자를 얻지 못한다면 두린의 직계혈통은 이대로 끊어지는 셈이었고, 결국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린이 호빗을 아내로 얻은 것이 문제였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거나 돌이킬 소린이 아니었기에,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필리나 킬리의 짝을 찾아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빌보만 불편한 마음으로 좌불안석할 수밖에.
"역시 여자 호빗을 신부로 맞이했어야 했나 봐요. 역시 로즈 에일이.."
빌보가 중얼거리듯 내뱉은 혼잣말에 소린과 필리가 동시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냐."
그리고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필리가, 어떤 불안한 예감에 몸을 떨며 자신의 삼촌을 바라보았다. 필리가 무슨 말을 할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표정으로, 소린이 물었다.
"뭔가 떠오른 게 있나?"
"혹시 엘프들의 숲에 간 건 아닐까요?"
-쿨럭쿨럭
필리의 말을 듣자마자 빌보가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소린 역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필리를 마주 보았다. 보통의 드워프라면 아무리 가출을 한다손 쳐도 머크우드 근처로 기어갈 리가 없지만, 킬리는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고는 했다. 필리의 머릿속에 좀 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혹시, 저 대신 자기가 먼저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
"뭐? 그럼 엘프를 신부 후보로 데려오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당혹스러움과 분노로 소린이 왕좌에서 벌떡 일어섰고, 빌보가 그런 소린을 진정시키려 작은 손을 바동거렸다.
"설마 그럴 리가요, 소린 진정해요. 내가 한번 어둠 숲으로 가서 킬리를 찾아볼게요."
"아니요."
그리고 필리가 빌보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제가 갈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둠 숲에서도 킬리의 모습은 코빼기도 찾을 수가 없었다. 뾰족 귀 녀석들과 엘프왕의 비아냥을 참고, 무기를 모두 몰수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킬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필리는 홀로 열심히 머크우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곳에 킬리가 없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불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홀로 쓸쓸히 에레보르로 돌아오며, 필리는 점점 침울해져 갔다.
킬리는 정말 자신보다 먼저 결혼이라도 할 셈으로 가출을 한 것일까?
벌써 킬리가 사라진 지도 몇 달이 지났는데, 킬리는 무사하긴 한 걸까.
이대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셈일까.
이대로 영원히 그를 잃은 채로 살 수 있을까?
에레보르 성문 앞에 도달할 때쯤 필리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킬리가 돌아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기도 했으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난쟁이들로부터 여전히 킬리를 찾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필리는 마치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필리는 조금 지쳤다는 핑계로, 소린이나 빌보를 찾지도 않고 자신의 방으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킬리, 이번 숨바꼭질은 완전히 네가 이겼어.'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와.'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문을 열며 필리가 생각한 내용을 읽기라도 한 걸까. 필리는 자신의 침대 위에 너무도 천진한 표정으로 누워서 잠이 들어있는 킬리를 보자마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조금 꾀죄죄한 행색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몇 번을 다시 봐도 틀림없는 킬리였다. 필리가 안도감에 미끄러지듯 침대 아래 무릎을 꿇고 앉자, 킬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킬리는 필리의 속도 모른 채, 너무도 해맑은 표정으로 그를 향해 빛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아침이야 필리."
"킬리.. 난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만 알았어."
필리가 그답지 않게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을 감싸 쥐자, 킬리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혹시 필리가 울기라도 하는 걸까 안절부절못해 하며 킬리가 두서없이 말했다.
"아니 난, 어머니를 만나고 왔어. 많이 걱정했어? 지금 설마 우는 건 아니지?"
킬리의 기대와 달리 눈물은 흘리지 않고 있던 필리는, 순식간에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킬리에게 되물었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지금 청색 산맥에 갔다 왔다는 말이야?"
"어? 어.."
"나는 네가 나보다 먼저 엘프와 결혼이라도 하려는 줄 알고 엘프들의 숲까지 들어갔다 왔는데!! 어머니를 만나고 왔다고!? 그런데 왜 내게 말하지 않았지?"
필리가 킬리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소리를 치자, 순식간에 꼬리를 내린 킬리가 필리의 손을 마주 잡으며 부랴부랴 변명을 늘어놓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어! 삼촌이 네 신붓감을 구하기 전에 다녀와야만 했다고! 그보다 내가 엘프와 결혼을 할 거라니, 미쳤어?"
"너는 가끔 엉뚱한 짓을 하니까!"
"결혼으로 장난을 치지는 않아!"
"툭하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장난쳤잖아!"
"그건 장난이 아니니까!"
순간 필리의 방안에 조용히 정적이 흘렀다. 킬리의 말을 들은 필리는 물론이고 킬리도 저 스스로 내뱉은 말에 놀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필리가 머쓱함에 킬리에게 잡혀있던 손을 슥 빼려고 했으나, 킬리가 그 손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잡아끌며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필리, 나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 그리고 형이 결혼하는 것을 지켜볼 마음도 전혀 없고."
"킬리.."
"만일 네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다면, 나는 그 길로 영원히 숨어버려서 네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필리는 킬리가 사라졌던 지난 몇 달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너무도 끔찍하고 우울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죽을 때까지 보내야 하다니. 필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킬리는 그런 필리의 반응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필리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네가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면, 나도 다시는 숨지 않을게.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어야만 해. 죽는 순간까지도."
이마에 맞닿아오는 따뜻한 킬리의 온기에, 필리는 그제야 안심하듯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숨결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 킬리가 있다. 필리는 가만히 눈을 감았고, 킬리는 그런 필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킬리가 필리와의 숨바꼭질에서 1승을 거둔 순간이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을 공유하며 잠시 그렇게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에겐 아직 넘어야만 하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다.
필리는 문득 소린의 얼굴이 떠올라, 번쩍 눈을 뜨고 킬리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킬리. 삼촌은 어떻게 설득하려고?"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기 오기 전에 삼촌을 만나고 왔어."
"삼촌이 내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
"응."
킬리는 필리의 사르륵거리는 금빛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해사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어머니가 우리의 동생을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드렸거든."
Finding Bride와 같은 시리즈이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아닙니다.
와, 킬필 진짜 오랜만에 썼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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